만필44 [응답하라 1972 ⑬] ♪얼굴 마주 보며 쌩끗♬ 그때 그 시절 '고교얄개'의 추억 오래된 서랍을 정리하다 보니 문득 빛바랜 기억 하나가 고개를 듭니다. 50여 년 전, 자옥이를 처음 만난 곳은 달콤한 버터 향이 훅 끼쳐오던, 종로의 한 제과점이었습니다. 당시 제과점은 우리 같이 가난한 고등학생에겐 별세계였죠.종로 제과점수영이란 운동은 칼로리 소모가 매우 큰 운동이다. 연습이 끝나고 수영장을 나설 땐 늘 뱃속에 거지가 든 것처럼 배가 고팠지만, 그날만큼은 눈앞의 단팥빵보다 맞은편에 앉은 자옥이가 더 신경 쓰였다. 나는 자꾸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며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쪽지를 한 달이나 늦게 봤다니까. 내가 원래 뒤늦게 시작한 공부에 너무 빠져있다 보니, 가방 깊숙한 곳은 잘 안 봐서...”사과가 세번 째 겹치자 자옥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저었다.“난 내가 차인 줄 알.. 2026. 6. 22. 칠순 산객의 거짓말 갈 때마다 같은 다짐 설악산 대청봉을 오를 때마다 같은 다짐을 한다."이번이 마지막이다."그런데 그 다짐은 이상하게도 오래가지 못한다.이번에도 그랬다.새벽어둠 속에서 몇 번이나 후회했고, 하산길에서는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하루쯤 지나고 나니 마음은 또 슬그머니 설악을 향하고 있었다.사람 마음이 원래 그런 것인지, 아니면 대청봉이 가진 묘한 마력이 있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대청봉만 해도 환갑 넘어서만 십여 차례 올랐다. 2023년에는 봄·여름·가을·겨울 네 계절을 모두 올랐고, 그다음 해에 세 번, 작년에 한 번 더 찾았으며, 비를 맞으며 오른 적도 있었다. 때가 되면 나를 불러내는 설악그만하면 충분할 텐데, 이상하게 설악은 다시 불러댄다.그러나 이번 산행은 예전과.. 2026. 6. 16. [응답하라 1972 ⑫] 아버지보다 중요했던 탁구장 주인 아저씨 내 인생에서 아버지를 빌렸던 두 번의 날안녕하세요. 월화만필입니다.오늘은 제 고등학교 시절,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지면서도 웃음이 나는 철없던 얄개 시절의 추억 하나 꺼내어 봅니다.제 인생에서 아버지를 딱 두 번 '빌렸던' 날의 이야기입니다.고교 시절, 싸움꾼이 아닌 내가 주먹패들에게 기죽지 않고 다닌 것은 불량한 복장 덕분도 있었다.바지는 건빵 주머니를 떼어 낸 미군 전투복을 염색해서 입고 워커를 끌고 다녔는데, 선생님께 몇 차례 걸려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엄마한테 워커도 괜찮다고 속이고 산 것이니, 구두나 교복 바지 살 돈을 또 타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생활지도 선생님에게서 최후통첩이 왔다.‘부모님을 모셔 올 것’하루를 사흘처럼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학교 앞 탁구장 주인을 아버지로 꾀는 데 성공했다.. 2026. 6. 15. 서울대공원 숲속의 저수지에서, 번잡을 잠시 내려놓다 서울대공원에 가는 날이면 보통은 동물원이나 테마가 있는 길부터 떠올리게 된다.테마가 있는 길아이들 손을 잡은 가족들, 사진을 찍으며 걷는 연인들, 지도와 안내판을 확인하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대부분은 볼거리가 많은 방향으로 향한다.그런데 이번에는 사람 많은 길 대신 숲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조금 조용한 곳을 걷고 싶었다.결과부터 말하면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숲 속의 저수지는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머물고 싶은 풍경을 품고 있었다.처음 인상은 '생각보다 더 조용하다'는 쪽에 가까웠다. 도시와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닌데도 공기가 확실히 달랐다. 나무가 많아서인지 소리는 한 겹 걸러져 들렸고, 발걸음도 자연스럽게 느려졌다.평소에는 목적지를 향해 걷느라 바쁜 편이.. 2026. 6. 2. [응답하라 1972 ⑪] 얄개들의 첫 삥땅은 목욕탕비 고등학교 2학년이 된다는 건 꽤 신나는 일이었다.무엇보다도 선배들의 절반이 졸업해 나갔고, 갓 입학한 후배들이 그 자리를 채웠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막내가 아니었다. 괜히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후배들을 만나면 이유 없이 걸음걸이도 달라졌다. 두 가지 큰 변화그 무렵 우리 사회에는 두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하나는 미국 대통령 닉슨이 중국을 방문한 사건이었다.당시만 해도 반공은 일종의 생활규범이었다. 고교 입시에서 동점자가 나오면 반공도덕 점수로 결정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모택동을 만나러 갔으니 사람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신문도 떠들썩했고 어른들도 수군거렸다."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고등학생이던 우리도 그 분위기를 느끼긴 했다.하지만 솔직히 말.. 2026. 6. 1. 대청봉 무박산행, 5분 차이로 버스를 놓치다 지난 5월 22일, 안내산악회를 통해 설악산 대청봉을 다녀왔습니다. (한계령~대청봉~백담사 코스)모바일로 보시는 분들을 위해 핵심 타임라인과 주말 산행 코스를 짧고 명확하게 공유합니다. 출발 전에 같은 버스에서 한계령에 내릴 수도 있고, 오색 입구에서 내릴 수도 있고, 그냥 앉아 있으면 설악동 소공원으로 가는 것. 제가 노인이 되다 보니까, 어디서 오르는 게 조금이라도 고생을 덜 할까?고민을 해봤습니다만. 작년 산행 때 대청봉을 85번 올랐다는 중년을 만났습니다.제 일행은 아니었지만, 지나면서 떨어뜨리고 가는 말이"85번 중 오색에서 오른 3번 빼고, 전부 한계령에서 올랐노라." 이게 웬 떡정보냐구 꿍쳐두었던 말이 기억나, 한계령으로 들머리를 잡은 겁니다.⏱️ 산행 타임라인 및 코스23:30 서울 전.. 2026. 5. 25. 이전 1 2 3 4 5 6 7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