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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필52

푸른 파도와 마천루 사이에서, 다시 만난 해운대 한반도 해수욕장의 대장 해운대 여름이면 방송과 뉴스 화면을 빼곡하게 채우는 알록달록한 파라솔의 물결.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늘에서 내려다본 해운대의 뜨거운 피서철 풍경을 한 번쯤 마주쳤을 것이다.2009년 천만 관객의 가슴에 깊은 각인을 남겼던 영화 처럼, 이곳은 단순한 피서지를 넘어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공유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여름 대명사다.근 10년 만에 다시 찾은 해운대의 첫인상은 생경하면서도 압도적이었다.백사장 북쪽으로 아득하게 솟아오른 초고층 마천루들이 하늘의 선을 완전히 새로 그려놓은 까닭이다.과거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완만한 해안선과 탁 트인 바다 풍경 위로 도심의 늘씬한 빌딩 숲이 겹쳐지며, 수직과 수평이 오묘하게 교차하는 웅장한 해양 도시의 면모를 자랑하고 있었다.승용차로 해운대를.. 2026. 10. 6.
[고교얄개 ⑱] 나무젓가락과 뺑코 먹고 싶죠? 짜장면군대에 있을 때 제일 먹고 싶었던 것. 첫 휴가 나가면 서울에 닿자마자, 열 일 제치고 먹어야지 했던 것. 중국집 하면 으레 떠오르는 게 짜장면이다.표준말이 ‘자장면’이라지만 어려서부터 익어온 정감 때문에, 나는 ‘짜장면’이라고 불러야 제맛이 났었다. 표준말을 모른 척할 수 없어 불편했는데, 최근에 짜장면도 표준말이 됐단다. 표준말이 되기 전에도 자장면이란 말은 써본 적이 없다.동교 진학한 고등학교 입학식 날, 우리의 주문은 우동 하나에 짜장면 셋."우짜짜에 짜곱 하나"그 이전에도 중국집에 갔었겠지만 그때가 첫 기억 마냥 남아있는 것은, 강렬한 추억 한 컷 때문이다. 흑백사진처럼 바랜 추억 가운데 강렬히 남아 있는 장면은 나무젓가락 비비기다.그 시절 젓가락의 품질이 좋지 않아서 제품 모.. 2026. 10. 5.
바다 위를 걸어서 한 바퀴 해운대에서 동해 방향, 간절곶 쪽으로 조금 달리면 청사포가 나온다. 이름만 들으면 오래전부터 있던 포구 같지만, 그곳은 바다를 향해 거대하고 푸른 철제 구조물이 하나 나와 있다. 청사포 다릿돌전망대다. 처음 보면 조금 엉뚱하다. 바다 위로 길게 뻗어나간 것이 아니라, 어느새 바다를 한 바퀴 휘돌아 나오는 모양이다. 파란 철골 사이로 바다가 보이고, 끝으로 갈수록 육지는 멀어진다. 발아래에는 유리도 있다. 예전에는 이곳을 걸으려면 구두나 등산화 위에 덧신을 신어야 했다고 한다. 유리 바닥을 깨끗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덧신을 신을 필요가 없었다. 그냥 평소의 신발 차림으로 들어가 바다를 향해 걷고, 한 바퀴 돌아 다시 육지로 나온다. 세상이 참 많이 편해졌다. 내 신발 밑창이 유리를 .. 2026. 9. 29.
마누라 미안허이! 마누라 자랑 딱 한 번만 허겄습니다. 제 아내는 젊었을 때 째끔 예뻤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죠? 새로 옮긴 교회에서도 별명은 '이쁜이 집사'로 통합니다.그전 교회나 새 교회에 같은 사람에 없는데 별명이 같다는 거, 이거 이거 굉장한 거 아닙니까?아내의 친구 중에서 아내보다 예쁜 사람은 못 봤습니다.(이 문장은 꼭 넣어야 합니다. 그녀가 이 블로그를 알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요즘 만난 테니스 후배라는 윤 집사는 다릅니다. 아내보다 젊으니까 확실히 예쁩니다.아내는 아침상에 김치 한 보시기를 올리며, 그 예쁜 후배가 담갔다며 가져온 거라고 했습니다.그럼 엊저녁에 먹은 김치도 그거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손가락을 쪽쪽 빨며 칭찬을 했습니다."지지배 어쩌면 이렇게 맛을 냈을까, 친정이 음식점 하나?"속 고갱이.. 2026. 9. 28.
한복 옷고름에 담긴 추억 수필가 초년병 시절, 제 이야기엔 아내가 많았습니다. 25년 전이면 4 반세기 전쯤이죠? 그때까지만 해도 젊었던 아내는 제법 예뻤습니다. '제눈에 안경' 역할인 줄은 알지만... 지금도 명절 때 한복 차림의 그녀를 보면, 옛 시절 나누었던 설렘과 고백들이 마음을 흔들곤 합니다.닷새간의 냉전을 끝낸 자줏빛 저고리그날 아침은 눈부셨습니다.햇살은 팔랑대는 아내의 옷고름에 자줏빛으로 부서졌습니다. 미용실 가는 돈이 아깝다며 기른 머리를 쪽쪄 올리고, 자주색 저고리에 연보라 치마의 아내가 참 예뻐 보였습니다.결혼 20년 동안 이런 외출은 손가락으로 셀만큼 드물었죠. 한복을 입은 아내는 또 다른 새로움으로 다가왔고, 오랜 세월 무던히 순종해 준 아내에게 난 몇 점짜리 남편일까 스스로 묻기도 했습니다.돌아보면 20년.. 2026. 9. 21.
세상만사 막걸리가 좋아 막걸리 예찬 -휘준- 탁주라 말 마시라 요거트가 따로 없네열흘에 스무 병씩 고이 담겨 도착하니찬장에 쌓인 술 보면 부럽잖다 임금님도 고1 때 배웠지. 고시조는 종장 첫음절만 맞춰주면 누구도 시비 걸지 않는다구. 막걸리에 폭 빠져 한시(漢詩)도 한 수 지어봤네 막걸리 예찬(濁酒禮讚)莫謂濁酒劣 (막위탁주열) — 탁주라 깎아내려 말하지 마시라 酸乳豈異哉 (산유기이재) — 요구르트와 맛과 멋이 무엇이 다르리 十日二十瓶 (십일이십병) — 열흘마다 스무 병씩 정성스레 찾아오니 棧上積玉液 (잔상적옥액) — 찬장 위에 고인 옥액 가득 쌓인 모습에 帝王何足羨 (제왕하족선) — 제왕의 부귀인들 어찌 부러우리오 막걸리 변주곡, 요즘은 주전자에 따라 마신다 냉장고 위 찬장에 가지런히 들어찬 흰 병 스무 개를 바라보고 있노.. 2026. 9.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