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필44 [응답하라 1972 ②] 걸레통, 지금 어디서 뭐하노? 그러니까 반백 년 전 이야기야. 선생님 중에는 교실에 오자마자 인사도 안 받고, 칠판으로 돌아서서 판서부터 하는 선생님이 계셨어.지리선생님이셨는데 별명은 지향사였지.'옥천 지향사' 설명만은 신들린 듯하셨잖아.정년이 가까우신 할아버지 선생님은노망 끼가 조금 있었으나, 판서 솜씨는 끝내주셨지. 20분쯤 쓰고 돌아서서 "빨리 베껴!" 하시곤,손가락의 분필가루를 입으로 요리조리 불면서, 5분 더 기다려주시고 5분쯤 설명하시던 선생님. 그렇게 두 번 하다 종이 울리면,마무리도 없이 그냥 사라지던 선생님. 어떤 땐 종소리를 환청으로 들으신 양설명도 안 하고, 그냥 나가시는 날도 있었어. 그 선생님은 귀도 조금 어두운 편이었으나,예절을 무척 중시한 노인이셨어.그래서 인사만 깍듯이 하면수업 중에 얼마든지.. 2026. 3. 21. [응답하라 1972 ①] 벼랑 끝에서 빌린 아버지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는 분명 벼랑 끝에 서 있었다. 문득 떠오른 기억 하나. 아버지를 ‘빌렸던’ 날이 두 번 있었다.고등학교 시절 나는 싸움꾼은 아니었지만,주먹패들에게 기죽지 않고 다녔다. 교복 바지 대신 건빵 주머니가 달린,미군복을 입었던 복장 덕분도 있지 않았을까.중고 워커는 끈을 반만 맨 채 너풀너풀,학교건 시내건 동네건 너풀대며 다녔다.선생님께 몇 번이나 걸렸지만, 복장은 고칠 수가 없었다. 어머니께 “군복도 괜찮다, 군화도 괜찮다”라고 큰소리를 쳐버린 뒤였으니까. 바지나 신발 살 돈을 또 타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생활지도 선생님에게서 최후통첩이 왔다. “부모님을 모셔 올 것.” 하루를 사흘처럼 고민했다. 그리고 끝내, 학교 앞 탁구장으로 갔다.그곳 주인을, 아버지로 모셔가.. 2026. 3. 20. 이전 1 ··· 5 6 7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