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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필44

여름 길목에서 마주한 풍경들 (上) 역동과 평화, 그리고 경계에서 멈춘 발길 지나온 계절은 늘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다가옵니다. 그동안 한겨울 길목에서만 지나치던 인제 매바위 폭포를 7월의 마지막 날 마주했습니다.겨울엔 꽁꽁 얼어붙어 거대한 얼음 기둥으로 침묵하던 그곳에서, 오늘은 세찬 물소리와 함께 폭포수가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1. 계절의 반전, 인제 매바위 폭포 높이 88미터의 매를 닮은 바위 절벽에서 쏟아지는 시원한 물줄기가 행인들의 더위를 씻어주는 모습이 장관이었습니다.같은 공간임에도 계절이 바뀜에 따라 전혀 다른 생명력을 내뿜는 자연의 이치가 새삼 신비롭게 다가옵니다. 얼어붙은 침묵 대신 생동하는 음률을 뿜어내는 폭포 앞에서, 렌즈를 통해 그 시원함을 담아보았습니다.2. 바다와 시냇물이 만나는 고요함, 청간정 다음 들른 곳은.. 2026. 8. 4.
오케바리, 그리고 코드 뽑힌 여자 지하철 문가에서 들은 버럭 소리"오케바리?"전철에 막 오르는데 누가 내 귀에다 소리를 버럭 질렀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문간에 선 한 청년이 핸드폰을 받고 있었고, 내 귀가 그의 입을 스친 꼴이었다.문이 닫히자 차 안이 조용해지고 그의 목소리도 줄어들었다. 그는 제 친구와 약속장소를 정하는 모양인데 '찾아올 수 있겠지?'라는 뜻으로 그 말을 외쳤던 것이다.외모도 준수한 청년이 여자친구의 머리칼을 연신 쓰다듬으며 말끝마다 ‘오케바리?’를 연발했다. 주위의 눈총도 모르는 체, 상스러운 말투로 전화에 열중하고 있는 젊은이 둘은 흔한 말대로 '한 쌍의 바퀴벌레' 같았다.전철이 서고 문이 열리자 엔진 소음이 커지고 그의 목소리도 다시 커졌다."XX놈아 앞 대가리에 타면 바로 2번 출구로 나온다니까. 앞 대가리에 .. 2026. 8. 3.
횡재수의 랠리, 그리고 붉은 수박 한 조각 장마철 하늘의 지리함 먹구름이 그득한 장마철 하늘을 바라보며 지레 마음을 접으려던 참이었다.그런데 이게 웬걸. 예보와 달리 비는 내리지 않았고, 거짓말처럼 테니스장 문이 환하게 열려 있었다.예상치 못한 선물 같은 날씨, 그야말로 ‘횡재수’였다.테니스든 골프든 배드민턴이든, 모든 운동의 가장 큰 숙제는 마음 맞는 파트너를 구하는 일이다. 시간 맞추랴, 실력 맞추랴 애쓰는 이들이 수두룩하지만 우리는 그런 걱정이 전혀 없다.언제든 라켓 두 자루 챙겨 들고 함께 코트로 나설 수 있는 평생의 동반자가 있으니 말이다.어느덧 칠순을 맞이하고도 코트 위에서 경쾌하게 공을 쫓는 아내를 보고 있노라면, 함께 땀 흘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새삼 고마운 마음이 깊어진다.코트에 서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 안았지만 상.. 2026. 7. 28.
고2 때, 베테랑의 첫 글자는 B인 줄 알았다 베테랑의 첫 글자가 V인지도 모르면 고교생 맞는가? 2026년 7월 25일. Y고 57 산우회의 서울숲 트레킹으로 10명이 모였다. 모교 교장을 지낸 이범희 동기도 있었는데, 며칠 전 세상을 떠난 농구선수 강현숙 이야기가 익고 있었다.동갑내기 스포츠 스타의 부고는, 우리 마음속에 숨어있던 50여 년 전 기억까지 함께 불러냈다. 전 교장선생님은 사뭇 비장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그런데 그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오히려 웃음이 났다. 대뜸 "추모위원장으론 얘가 적격"이라며 나를 찍었다. “내가 뭐 사귄 것도 아니고, 쫓아갔다가 미역국 먹고 온 눔인데….” “그래도 말 걸어본 자는 네가 유일하잖아. 입씨름에서도 안 졌다니, 그냥 맡김이 아니고 맡낌.” 2026년 7월 27일 www.youtube.com.. 2026. 7. 27.
나룻배와 행인, 그리고 따스한 정 1. 서른 해의 세월을 아우르는 울타리 어제(2026.7.18)는 복달임을 겸한 동창회가 있었다.동창회라고 하면 으레 같은 학년끼리 만나는 모임을 떠올리지만, 우리 모임은 다르다. 안양에 사는 Y고교 출신들의 모임이라 선배와 후배가 한자리에 모인다.위로 15년 선배님부터 아래로 15년쯤 후배까지, 서른 해의 세월을 아우르는 이들이 한 울타리 안에서 어울리는 것이다.내 나이 올해로 일흔 하나. 학번으로 쳐도 중간 지점인데, 어느새 나는 대접받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은퇴자라는 이유로 회비는 조금 내고 맛있는 음식은 실컷 얻어먹는다. 비용의 대부분은 현역으로 활동하는 예순 초중반의 후배들이 기꺼이 짊어진다.처음에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마음보다 고마움이 더 크다.생각해 보면 참 아름.. 2026. 7. 21.
[고교얄개⑯] 버스 안내양 누나들 미안하옵니다 1. 50년 전 버스 안의 얄개들 50여 년 전의 얄개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시내버스 안내양에게 '누나'라고 부른 축과 '언니야'라고 부른 축으로. 전 축들은 교복에 꽂힌 학년 배지대로 나이를 인정하는 아이들이고 후 축들은 마치 몇 년씩 꿇어서 나이는 많다고 우기는 구레나룻들이다. 전 축들은 버스표 냈냐고 물으면 고분고분 내던 자세를 재연해 보이고 후 축들은 기분 나빠 내릴 테니 내지도 않은 버스표 내놓으라고 코털을 날린다. 2. 회수권 한 장에 실린 얄개들의 장난버스 탈 때는 삼삼오오 사이좋게 오르는 게 좋다. 회수권은 뒷 녀석이 모두 낼 것처럼 마구 떠들며. 안내양은 각자 내고 타라고 가슴으로 막는다. 그러면 뒤에서 떠밀린 척, 맨 앞 녀석이 가슴으로 뚫는다. 맨 앞 역할은 서로 하고 싶어.. 2026.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