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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필44

가난과 슬픔이 머물던 그 시절 그 방 서울 은평구 신사동 반지하 18평의 집에서, 숨 막히던 여덟 명의 아침방이 없어 거실 소파에서 1년 내내 잠을 잔 동생이 아침 밥상 앞에 앉았다. 이윽고 2번 방에서 고3이던 장조카와 고1인 조카딸이 나와 수저와 저분을 배분했다. 셋 다 출근과 등교를 서두를 시간이다.3번 방에서 낯선 처자 하나가 수건을 들고, 앉은뱅이 밥상을 돌아 화장실로 간다. 이 시간엔 좀 피해 주었으면 싶었지만 그녀 역시 출근해야 한다. 주방 옆에 매우 작은 3번 방에 세 들어 살던, 낯선 그녀 역시 피해자였다.노부부와 자기만 살게 될 줄 알고 반지하에 이사를 왔는데, 며칠 뒤에 장남 가족이 들이닥치더니, 경주에서 왔다는 막내아들까지 함께 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1번 방에 노부부 2명, 2번 방에 장남 가족 4명, 3번 방에 .. 2026. 7. 14.
세월이 흘러도 서른을 넘지 못하는 내 동생 올해로 내 나이 일흔둘이다. 거울을 볼 때마다 부쩍 늘어난 흰머리가 눈에 밟히고, 계단을 오를 때면 무릎이 먼저 제 나이를 고한다. 흐르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나이를 배달해 준다.그런데 우리 집에는 이 엄연한 세월의 법칙을 비켜 간 식구가 하나 있다. 세 살 아래인 내 동생. 그 녀석은 마흔 해가 넘도록 여전히 스물아홉 살 청춘에 머물러 있다. 살아있다면 올해 예순아홉 살이렷다. 동생이 중학교 졸업반이던 겨울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형, 나 고등학교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가장도 아니고 아버지도 아닌, 그저 세 살 많은 고등학생에게 의지하던 인생의 첫 질문이었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 인문계에 진학해 대학을 꿈꿀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목수이신 아버지의 무.. 2026. 7. 13.
할머니, 워디갔다오세유? 인천국제공항은 24시간 깨어있습니다.국제공항은 떠나고 들어오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죠.한밤중에도 살아있는 곳입니다. 지금 쓰는 얘기는 20여 년 전 기억이니지금은 달라진 장면도 많을 겁니다. 분위기가 들떠 있거나포옹을 오래 나누는 사람들은 출국자들이고,피곤해 보이거나 말이 없는 사람들은 입국자들입니다.어느 비행기에든우리나라 60세 전후의 아주머니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산파들이지요. 그때 그분들은 질서에 조금 미숙하셨지만지금은 달라지셨겠지요.조용하던 입국장이 시끌시끌해지면 영락없이우리나라 비행기가 도착한 겁니다. 지방에서 온 단체 여행자들은 같은 색의 모자를 쓰거나같은 색의 조끼를 입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체가 주는 소속감과 안전의 도구이며,낯선 외국에서도 보호받는 수단이 되지요... 2026. 7. 7.
[응답하라 1972 ⑮] 그땐 우리도 우리가 한심했다 고2 얄개시절 그러니까 50여 년 전, 우리가 저지른 일 중에 범죄인 줄 알고 저지른 일이 딱 하나 있다.정말 장난으로 말해본 거였는데, 그 말을 들은 두 친구가 착 달라붙는 바람에 우리의 모의는 급속히 합의됐다. 셋이서 시험지를 훔치기로 한 것이다.시험 기간 중엔 각자의 교실을 도서관 삼아, 그곳에 남아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많았다. 밤이 이슥해지면서 불 켜진 교실이 몇 안 남았을 때, 우리는 겁도 없이 2층 교무실을 털었다.그것은 타이거마스크의 박달 몽둥이 때문이다.그는 수학 선생이지만 마스크를 안 써도 레슬링의 반칙왕 같이 생긴 남자인데, 시험문제 하나 틀리는 데 무조건 한 대씩 때렸다.다른 애들은 몇 개 틀렸나를 걱정했지만, 운동선수였던 나는 몇 개 맞을까가 궁금한 처지였다. 그러니 몽둥이 앞에 도.. 2026. 7. 6.
[응답하라 1968 ⑭] 아아 그때 그 감자 1968년은 제가 중학생이 된 해입니다. 신입생의 특징은 새 교복이죠. 헐렁하게 조금 큰 교복과 모자까지 조금씩 컸던 꼬마들. 새 책가방을 들고 오전 수업만 마치면 동대문 수영장으로 붙들려 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온몸의 힘이 다 빠질 때까지 수영을 배웠습니다. 체벌에 대한 긴장과 혹독한 훈련으로 늘 허기가 졌었죠.몸이 파김치가 되어 수영장을 나서면 호떡, 냉차, 구운 감자를 파는 리어카가 즐비했습니다. 축구장 뒷길부터 지금의 전철역까지 먹거리들이 띄엄띄엄 늘어서 있었습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 구운 감자가 석양빛에 번들거리면 왜 그리도 먹고 싶었는지 모릅니다.첫 집을 참고 지나쳐도 버스정류장에 가려면 그런 리어카를 십여 개나 더 지나야 했습니다. 사방에서 아주머니들이 불렀습니다."학생, 회수권도 받.. 2026. 6. 29.
없어진 어처구니를 찾아서 어처구니가 맷돌 손잡이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무릎을 쳤다. "아, 그래서 어처구니없다는 말이 나왔구나." 듣자마자 고개가 끄덕여졌다.맷돌에 손잡이가 없다면 곡식을 갈 수 없을 테니 말이다.얼마 뒤에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에는 궁궐 지붕 위에 올려놓는 흙으로 만든 인형, 즉 토우(土偶)가 어처구니라는 설명이었다. 공사가 끝날 무렵 마지막으로 올려야 할 토우를 빠뜨리면 큰일이니 "어처구니없다"라는 말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 또한 그럴듯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두 이야기를 사실로 믿고 살았다. 아마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이야기라면 더욱 쉽게 믿는다. 궁궐 지붕 위에서 마지막 토우를 찾느라 허둥대는 장인의 모습. 맷돌 앞에서 손잡이를 찾으며 .. 2026. 6.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