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필44 [응답하라 1971 ⑧] 얄개들이 깔아뭉갠 선생님, 아으 다롱디리 "빛바랜 흑백 사진 속, 말타기를 하며 환호하던 얄개들. 그날의 무너짐이 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착륙이 될 줄은 그때 아무도 몰랐습니다." 1971년 가을 소풍날,동구릉에서 말타기가 벌어졌다.어느 문인석에 기대 내가 마부로 자리를 잡자, 눈치 빠른 국어쌤이 소매를 걷어붙이셨다. "내가 말 할게. 나를 타봐라 무너지나!" 선생님은 내 가랑이 사이로 머리를 쑥 밀어 넣으셨다. 말 등 위에 친구 둘이 엉덩이를 흔들며 말을 괴롭혔다.이 장난이 사고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말이 된 선생님의 허리는 이미 활처럼 휘어 있었다. 사건은 우리 반 '키 1 짱' 장다리 녀석이 슬쩍 올라타는 순간 벌어졌다.육중한 무게에 '인간 말'은 비명도 못 지르고, 그대로 짜부가 되어 버렸다. 선생님을 깔아뭉갠 얄개들은 환호성.. 2026. 3. 27. [응답하라 1972 ⑦] (편지) 연숙에게 연숙, 이 편지 농구부로 보내는 이유는 학년을 몰라서이구. 예쁜 여학생 이름으로 보내는 건 나의 센스야. 막히면 운명이고, 전해지면 행운이지. 나 요즘 농구에 폭 빠졌어. 이정도 운동량이면 키도 더 클 거야. 우리 학교는 코트가 아스팔트라서 비만 그치면 바로 할 수 있거든. 선수들은 강당체육관에서 뛰고, 우리는 땡볕에서 헉헉 대는데, 헉헉 멤버들 모두 그대 팬이야. 숙, 그대 만난 후부터 키는 크고 봐야 한다는 욕심이 생겼어. 키가 비슷한 학생들 틈을 지날 땐, 내가 더 큰 척하려고 뒤꿈치를 들고 다닌 적도 있었지. 이러다 보면 진짜 키가 더 잘 크지 않을까? 자나 깨나 키 클 생각, 앉으나 서나 키 180 그래도 키 크는 환상보다 그대 생각이 우선이긴 했어. 난 2학.. 2026. 3. 26. [응답하라 1972 ⑥] 웃기는 얘기는 제목도 있어요 얘기 제목은 '고1 때의 학문 수준'입니다. 고1 때 교실의 첫 인상은 중학 때보다 좀 시끄럽다는 것이었습니다.동교 진학한 친구들이라도 그렇지, 학기 초엔 서먹한 분위기에 조용해야 맞지 않습니까? 그러나 반대였습니다.한참 지나서야 우리 반이 돌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기서 벗어나려면 시험을 잘 보는 수밖에 없었지요. 기말 고사 생물 시간이었습니다.아는 것부터 쓰고 모르는 건 나중에 고민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아는 게 깜빡 생각 안 날 때처럼 억울할 때가 없죠. 마지막까지 끌어안고 있던 문제의 답은 '항문'이었습니다. 한 문제라도 더 맞히겠다고 머리를 쥐어짜고 또 짜다가, 종소리와 함께 '똥구멍'이라 쓰고 나왔습니다.빈칸으로 놔둘 수는 없잖아요. 답안지가 걷히고 친구들의 웅성거림에서 정.. 2026. 3. 25. [응답하라 1972 ⑤] 스타 미인 선수와 나란히 걷던 신당동 스타 선수 혼자 남은 서울역 버스정류장.버스에 오르려 할 때, 가방이라도 붙잡았어야 했는데 놓쳤어. 할 수 없이 버스까지 따라 탔지,눈치만 살피며 아무 말도 못 걸고 있는데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얼굴은 울긋불긋. 사람들이 많이 타자 그녀와 난 점점 더 가까워졌어. 버스 안에서 몸이 닿을 때도 있었지만, 내가 먼저 등을 돌렸어.아이구, 얼마나 떨었는지 짐작은 가겠지? 너무 센 상대를 찍은 거야. 코트에서 뛸 땐 작고 예뻤지만, 교복 입은 그녀는 너무 큰 모델이었어.‘포기하고 돌아갈까?’이런 생각을 왜 안 했겠어.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지, 얘깃거리는 만들어 가야 하잖아. 파이팅! 하며 등 두드려 준 친구들이 밉기까지 했어. 다시 마음을 잡았지만, 차 안에선 말을 못 붙였는데 어느새 그녀는 내렸어.나?.. 2026. 3. 24. [응답하라 1972 ④] 우중충했던 남학교에, 여학생들이 우루루 1972년 가을 고2 때, 학교 실내 농구장에서 고교농구대회가 열린 것을 기억하십니까?장충체육관이 공사 중이었는지, 어느 날 갑자기 울긋불긋한 응원부대가 들이닥쳤습니다. 교문 두 개로 들이닥친 꼬마 숙녀들이 교정을 거닐며, 우중충했던 남학교는 생기가 돌았습니다. 정말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살만했습니다. 꿈인가? 파릇파릇 어린 나이에도,남녀는 어울려야 살만한 세상이란 걸 모르는 친구는 없었죠?고교 3년 동안 살만했던 시절은 딱 그 며칠이었습니다. 옥외 농구장을 쓰던 우리는 한 명의 농구 스타에게 폭 빠졌습니다.M여고 7번, 얼굴도 짱 예쁜데 농구 실력도 굉장했습니다. 꽁지머리 팔랑팔랑, 코트 가운데서 팀을 지휘하던 꼬마 선수에게 우리는 꽂혔습니다. 나중에 그 선수는 세계 선수권.. 2026. 3. 23. [응답하라 1972 ③] 개교 이래 처음 있는 일 무서운 체육선생님의 미소 1972년 봄, Y고교 교정에도 개나리들이 사방에서 소곤댔었다.검정 교복들이 우글거리고, 뛰노는 선머슴 중에는 죄수들이 간혹 보였지만,학교는 노란빛 울타리가 감싸고 서서 교정다웠다. 간혹 여기저기 섞여있는 죄수들은, 두발 단속에 걸려 까까중머리로 등교한 놈들이다. 그 시대 얄개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머리 스타일은, 바지 밑단을 늘려 나팔바지를 만드는 일보다훨씬 중요한 문제였으므로, 빡빡머리가 되는 것은 크나큰 걱정거리였다. 교실 창가에서 나는 까까중들을 측은히 쳐다보며, 친구 따라 처음 간 교회를 생각했다.검게 윤이 나는 피아노 의자를 노랗게 물들인 연주자의 스커트, 스커트에 어울린 노란 머리띠. 개나리 빛 스커트가 잘 어울리는 여학생은, 내 .. 2026. 3. 22. 이전 1 ··· 4 5 6 7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