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내 나이 일흔둘이다.
거울을 볼 때마다 부쩍 늘어난 흰머리가 눈에 밟히고, 계단을 오를 때면 무릎이 먼저 제 나이를 고한다. 흐르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나이를 배달해 준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이 엄연한 세월의 법칙을 비켜 간 식구가 하나 있다. 세 살 아래인 내 동생. 그 녀석은 마흔 해가 넘도록 여전히 스물아홉 살 청춘에 머물러 있다. 살아있다면 올해 예순아홉 살이렷다.
동생이 중학교 졸업반이던 겨울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형, 나 고등학교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가장도 아니고 아버지도 아닌, 그저 세 살 많은 고등학생에게 의지하던 인생의 첫 질문이었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 인문계에 진학해 대학을 꿈꿀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목수이신 아버지의 무거운 어깨를 알았기에, 나는 깊은 고민도 없이 그저 툭 대답을 던져버렸다.
“공고에 가는 게 좋겠는데…….”
잘나지도 못한 형이었는데, 동생은 그 무책임한 조언에 군말 하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난한 아버지 대신 던진 그 한마디가 동생의 인생을 결정지어 버릴 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녀석은 형의 가벼운 예상보다 훨씬 든든하고 큰 사람이었다. 공고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동생은 경주로 내려갔다. 사촌누나 집에 기숙하며 식품 창고일을 맡았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책을 피는 모습이 겹쳐온다. 그 지독한 주경야독 끝에 지방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해 냈다. 스스로 제 삶을 묵묵히 일으켜 세운 대견한 동생이었다.
그렇게 대학 졸업장을 안고
마침내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남들 다 부러워할 번듯한 직장에도 취직했다. 약혼녀도 생겼다. 이제는 고생 끝에 낙이 올 줄만 알았다.
그러나 서울 생활은 길지 않았다. 취직한 지 겨우 1년이 지났을 무렵.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근하려던 녀석이 갑자기 거실에 쓰러졌다.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는 아직 젊은 사람이니 결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그 말을 믿었다. 그러나 불과 여섯 시간 만에 심장은 멈춰 서고 말았다. 사인은 심근경생, 과로사였다. 동생의 나이 스물아홉.
지나고 보니 동생은 이 험난한 세상에서 나와 함께 늙어 갈 유일한 친구이자 누구보다 든든한 말벗이었다. 내가 무심코 던진 답변 한마디로 고생만 시키다 보낸 것 같아, 가슴 한구석에는 늘 지우지 못할 아픔만 앙금 져 있다.
지금도 앨범엔 한문 필적이 좋은 그 아이의 이력서와 사진이 들어있다.
○○大學 商經大學 經營學科 卒業 姜아무개
‘차라리 서울로 오지 말고, 그냥 경주에 계속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서울의 매정한 과로에 꺾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나와 함께 흰머리는 누가 많냐며 술 한잔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이제 와 부질없는 후회를 해보아도 무엇이 돌아오랴.
나이가 들고 부모님마저 모두 떠나보내고 나니, 형제라는 존재감은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그저 같은 하늘 아래 어딘가에 살아만 있어도 든든한 존재가 형제 아니던가.
바보같이, 그런 귀한 형제를 너무 일찍 잃고 외롭게 살아온 세월이 벌써 40여 년. 세월은 흐르고 상처는 아문다지만, 낡은 사진 속에서 여전히 스물아홉 청춘으로 활짝 웃고 있는 동생은 볼 때마다 가슴이 아리다.
나는 일흔둘의 노인이 되었고, 동생은 아직도 스물아홉.
녀석아, 살아만 있어 주지…
오늘도 나만 늙어 가는 거울 앞에서, 함께 늙어 가지 못한 유일한 동생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
'만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나룻배와 행인, 그리고 따스한 정 (0) | 2026.07.21 |
|---|---|
| 가난과 슬픔이 머물던 그 시절 그 방 (0) | 2026.07.14 |
| 할머니, 워디갔다오세유? (0) | 2026.07.07 |
| 없어진 어처구니를 찾아서 (0) | 2026.06.23 |
| 칠순 산객의 거짓말 (5) | 2026.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