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신사동 반지하 18평의 집에서, 숨 막히던 여덟 명의 아침

방이 없어 거실 소파에서 1년 내내 잠을 잔 동생이 아침 밥상 앞에 앉았다. 이윽고 2번 방에서 고3이던 장조카와 고1인 조카딸이 나와 수저와 저분을 배분했다. 셋 다 출근과 등교를 서두를 시간이다.
3번 방에서 낯선 처자 하나가 수건을 들고, 앉은뱅이 밥상을 돌아 화장실로 간다. 이 시간엔 좀 피해 주었으면 싶었지만 그녀 역시 출근해야 한다. 주방 옆에 매우 작은 3번 방에 세 들어 살던, 낯선 그녀 역시 피해자였다.
노부부와 자기만 살게 될 줄 알고 반지하에 이사를 왔는데, 며칠 뒤에 장남 가족이 들이닥치더니, 경주에서 왔다는 막내아들까지 함께 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1번 방에 노부부 2명, 2번 방에 장남 가족 4명, 3번 방에 낯선 처자 1명, 거실엔 내 동생 1명. 18평 안의 8명에게 등을 펴고 설 수도 없는, 천장 낮은 화장실이 가장 문제였다.
가족이 아닌 처자는
입주 때와 환경이 다르다며 방을 빼달라 했단다. 아버지도 보증금 1백만 원만 있으면 내보내고 막내를 그 방에 들이면 딱이다 싶어, 당골 삼촌을 찾아가 사정도 해봤다고 전주 고모가 전했다. 자기 방만 있었어도 죽진 않았다고 울먹이던 고모다.
장남 부부는 서울 강남에서 잘 살다가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어 들이닥쳤으니, 백만 원이 아니라 여윳돈이 몇만 원도 없어 옴쭉달싹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형수와 어머니는 같이 산 적이 없고, 성격도 몹시 달랐다. 동생과 14살 차이 나는 형님은 처음부터 우리와 따로 살았던 터라, 돈이 조금만 있었어도 우리 집으로 들어올 부부가 아니었다.
고교 시절 동고동락한 절친의 배신
그러나 당시 일간 신문에도 난 사기를 당했고, 범인은 절친으로 지내던 1살 위의 사촌형이었다. 두 사람은 고교 시절 우리 집에서 함께 동고동락한 절친이었기에, 그 믿음의 대가는 더 가혹했다.
형수는 동창회 총무이던 자기 신랑의 동창회 기금은 물론, 회사 입사동기회 기금까지 모두 사촌 형수에게 갖다 바쳤다. 채권단이 형성됐는데 친척이라는 이유로 채권단에선 끼워주지도 않았고, 그렇게 탈탈 털린 알거지가 되어 우리 집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얼마나 죽을 맛이고 기가 막힐 노릇인가.
그렇게 해서 재산 한 푼 없이 부모님 집으로 기어 들어오는 심정이 어땠겠는가. 장사하던 사람이면 재기를 꿈꿀 수도 있지만, 봉급쟁이로서 망한 처지는 빤한 절망뿐이었다. 고3과 고1이던 아이들 교육도 망한 것이다.
거실 소파에서 명을 재촉하던 동생
2번 방을 쓸 줄 알고 상경했던 동생은 어느 날 갑자기 땅 밑으로 꺼져버린 듯한 반지하 집에 망연자실했다. 아버지는 1번 방(안방)에서, 형님은 2번 방에서 떠드는 술주정을 내 동생은 거실 소파에서 고스란히 들어야 했다.
‘우리 집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
이 깊은 고민은 밤마다 동생의 명을 재촉하고 있었다. “약혼녀도 있는데 혼례를 생각하면 나는 몸이 부서져라 벌어야 한다.” 그렇게 말하며 매일 밤 야근을 거듭하던 착한 아이는, 어느 날 자고 일어난 자리에서 쓰러졌는데 그게 황천길이었다.
사촌형네는 형식적인 이혼을 거쳐 사촌 형수만 감옥살이를 하고 나왔다. 그들은 그것으로 여러 채권자의 빚에서 자유로울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형네는 채권단에 들지도 못했고, 그를 감옥으로 보낸 당사자도 아니며, 언젠가는 갚겠지 믿고 기다려준 선량한 채권자였을 뿐이다.
사기를 당한 우리 형은 쫄딱 망했는데, 사기범인 사촌형은 번듯하게 잘 살고 있다.
은혜를 무단 파묘로 갚은 장조카
그리고 그 반지하에 살던 남자 셋. 동생과 아버지와 형은 별세 시기는 다르지만 모두 그 상처로 죽었다. 그리고 그 셋의 무덤은 5년 전, 한 날에 사라졌다. 나의 조카가 내게 알리지도 않고 무단 파묘한 것이다. 2008년도에 없어진 호적법에 의하면, 집안의 호주였던 조카에게 산소 처분권이 있다는 이유였다.
나와 스물네 살 차이가 나는 조카가 군 복무 중일 때, 제 아비가 죽었다. 나는 환갑이 지나기까지 수십 년 동안 내 부모님 묘소와 형님의 묘소를 관리하고 벌초해 왔다. 십여 년 전 환갑이 지나, 조카에게 산소 관리를 넘겨주었더니 돌아온 것이 무단 파묘란 말인가.
그래도 그렇지 어찌 조부모의 자식에게, 평생 산소를 돌본 숙부에게 말 한마디 없이 묘소를 처분할 수 있단 말인가. 법은 그렇다고 치자. 처벌할 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도의적으로도 죄가 안 된다는 것인가? 적어도 내 부모의 유골만은 내게 주었어야 도리 아닌가.
수목장을 지냈다지만 이는 내다 버린 것과 무엇이 다른가. 생각하면 지금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법의 무죄가 도덕의 무죄는 아니다
채권자들에게 쫓겨 감옥살이를 하고 나왔다고 해서 죄와 빚이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고 해서 조카의 도덕적 죄까지 씻기는 것은 아니다. 저들은 법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며 나를 비웃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법의 무죄가 도덕과 양심 앞에서의 무죄를 뜻하진 않는다. 이미 죽어버린 내 형과 동생에게, 갚지 못한 마음의 빚이 여전히 사촌형에게 남아있듯.
부모와 삼촌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산소를 파묘해 버린 장조카 역시 도덕적 죄 앞에서는 평생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단호히 묻는다. 무단 파묘, 진정 그 죄를 물을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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