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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필/고교얄개

[응답하라 1971 ⑧] 얄개들이 깔아뭉갠 선생님, 아으 다롱디리

by 월화 희준 2026. 3. 27.

<이 글은 제 브런치에 연재한 '월화만필'을 수정·보완한 글입니다>

 
"빛바랜 흑백 사진 속, 말타기를 하며 환호하던 얄개들.
그날의 무너짐이 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착륙이 될 줄은 그때 아무도 몰랐습니다."

 
1971년 가을 소풍날,
동구릉에서 말타기가 벌어졌다.
어느 문인석에 기대 내가 마부로 자리를 잡자, 눈치 빠른 국어쌤이 소매를 걷어붙이셨다.
 
"내가 말 할게. 나를 타봐라 무너지나!"
 
선생님은 내 가랑이 사이로 머리를 쑥 밀어 넣으셨다. 말 등 위에 친구 둘이 엉덩이를 흔들며 말을 괴롭혔다.
이 장난이 사고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말인 선생님의 허리가 이미 휘어 있음에도^^

 
말이 된 선생님의 허리는 이미 활처럼 휘어 있었다. 사건은 우리 반 '키 1 짱' 장다리 녀석이 슬쩍 올라타는 순간 벌어졌다.
육중한 무게에 '인간 말'은 비명도 못 지르고, 그대로 짜부가 되어 버렸다.
 
선생님을 깔아뭉갠 얄개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마부였던 나는 무너지는 선생님과 같이 무너졌다.
선생님은 발목을 삐어 한동안 다리를 저셨다.
 
지금 사진을 다시 보니, 장다리가 올라타기 직전 선생님의 오른손은 마부의 허벅지를 놓치고 있었고, 왼손도 밀려 마부의 무릎을 잡고 계셨다. 그 와중을 알아차렸다면 나는 스톱을 외쳐야 했었다. 
 
선생님은 고통을 삼키며 최악을 견디셨던 게다. 기둥 뽑힌 지붕에 바위 하나를 더 던져놓고, 우리끼리 좋다고 손뼉을 친 꼴이었으니, 
철없던 시절의 장난치곤 참으로 잔인한 풍경이었다.
 
세상적으로 봐도 말을 구할 사람은 마부뿐이다. 선생님을 구할 사람은 마부인 나였는데 낄낄댔으니. 흘러내린 선생님의 손을 감지하고, 스톱을 외쳐 나는 장다리의 접근을 막았어야 했다.
 

학교로 돌아온 며칠 뒤, 죄송한 마음에 연고를 샀다. 서툰 편지와 함께 슬그머니 드렸는데, 거기서 내 인생의 반전이 일어날 중이야.


선생님은 화 대신 인자한 웃음을 보이셨고, 나는 어렴풋하게나마 장래 희망을 품게 되었다.
 
'선생님, 사진 보니 범인은 장다리예요.
걔가 타자마자 무너지셨잖아요.
아으 다롱디리 날랜 낼스망정...‘
 
편지에 적어 넣은 이 고어(古語) 한 줄이, 선생님의 즉석 칭찬을 불러왔다.
 
나는 당시 국내에 한 곳뿐이던 실내 풀장을 찾아, 태릉 선수촌엘 다니던 수영 선수였다.
 
연습장이 멀어 단축수업을 밥 먹듯 했고, 교내에서 운동하는 농구부나 럭비부보다도, 공부할 시간이 훨씬 적을 수밖에 없던 아이.
 
그래서 공부를 지지리도 못하던 아이가, 국어 선생님께 고어체로 안타까움을 남긴 것이다.

뻔데기 옆에서 주름잡지 말라고 핀잔을 주실 수도 있는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는 내 마음에 깊은 닻을 내렸다.
 
그날 우리 반은 두 패로 나뉘었다. 
말타기 패와 야전 틀어놓고 어깨를 들썩이던 팝송싸랑패. 우리 반의 팝송 대장은 이강열 군이다. 

뒤쪽 야전 수리에 골몰한 검은 안경태 옆모습이 음악대장 이강열


나는 팝송의 '팝'자도 모르던 때이다.
운동한답시고 수업을 많이 빼먹어, 영어실력이 바닥이던 내가 팝송을 좋아할 리가.
 
그러나 영어선생님이 아니면 어떠랴 국어선생님의 칭찬 한마디가, 
운동선수의 마음에 문학의 씨앗을 심었나 보다.

전교 꼴찌인 내가 어느 선생님께 칭찬받아보겠는가. 고교 3년 아니 재수 포함 4년 동안,
딱 한번 들은 칭찬은 나를 국문과로 떠밀었다.

55년이 흐른 지금 여전한 리듬을 타고,
원고지 위를 달리는 수필가가 되어 있음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그날의 말타기 사고가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착륙이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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