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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 부부의 랠리, 110초에서 일단 끊고 아침 햇살이 코트 위의 흰 선을 선명하게 깨우면, 우리 부부는 라켓을 빙긋 쥐고 마주 선다.그리 넓지 않은 사각형 공간그곳은 일주일에 서너 번씩 우리만의 무대가 된다.테니스 동호인들은 대부분 네 명이 함께하는 복식경기를 즐긴다.특히 혼합복식에서는 여성의 실력이 승패를 좌우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실제로 대회에 나가 보면 여성 선수의 기량이 좋은 팀이 강한 경우가 많다.하지만 우리 동네에는 우리 또래의 테니스 동호인을 찾기 어렵다.이웃 코트에도 없다.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게임보다 랠리를 즐기게 되었다.게임은 재미있다.하지만 점수가 걸리면 사람 마음이 묘해진다.공 하나 놓쳤을 뿐인데 괜히 아쉽고, 미안하고, 때로는 서운하기도 하다.부부라고 예외는 아니다.반면 랠리는 다르다.상대를 이기기 위한 공이 아니라 .. 2026. 6. 9.
마라톤 참가비 10만 원, 나는 혼자 양재천에서 뛴다 요즘 마라톤 인기가 대단하다.예전에는 운동장 몇 바퀴 뛰는 것도 힘들어하던 사람들이 주말이면 러닝화를 신고 거리로 나선다. 지하철에서도, 공원에서도, 하천 산책길에서도 달리는 사람을 쉽게 만난다. 달리기가 어느새 하나의 문화가 된 모양이다.나 역시 달리기를 좋아한다.정식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적은 없다. 대신 양재천을 따라 달리며 내 다리가 어디까지 버텨주는지 시험해 보곤 했다. 누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니고, 누가 기록을 재준 것도 아니다. 그저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아직도 끝까지 갈 수 있겠니?"달리기를 하다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처음에는 숨이 차고 다리가 무겁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몸이 리듬을 찾는다. 발은 저절로 움직이고 생각은 가벼워진다. 그때부터는 운동이라기보다 명상에 가까워진다.그래.. 2026. 6. 8.
서울대공원 숲속의 저수지에서, 번잡을 잠시 내려놓다 서울대공원에 가는 날이면 보통은 동물원이나 테마가 있는 길부터 떠올리게 된다.테마가 있는 길아이들 손을 잡은 가족들, 사진을 찍으며 걷는 연인들, 지도와 안내판을 확인하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대부분은 볼거리가 많은 방향으로 향한다.그런데 이번에는 사람 많은 길 대신 숲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조금 조용한 곳을 걷고 싶었다.결과부터 말하면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숲 속의 저수지는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머물고 싶은 풍경을 품고 있었다.처음 인상은 '생각보다 더 조용하다'는 쪽에 가까웠다. 도시와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닌데도 공기가 확실히 달랐다. 나무가 많아서인지 소리는 한 겹 걸러져 들렸고, 발걸음도 자연스럽게 느려졌다.평소에는 목적지를 향해 걷느라 바쁜 편이.. 2026. 6. 2.
[응답하라 1972 ⑪] 얄개들의 첫 삥땅은 목욕탕비 고등학교 2학년이 된다는 건 꽤 신나는 일이었다.무엇보다도 선배들의 절반이 졸업해 나갔고, 갓 입학한 후배들이 그 자리를 채웠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막내가 아니었다. 괜히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후배들을 만나면 이유 없이 걸음걸이도 달라졌다. 두 가지 큰 변화그 무렵 우리 사회에는 두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하나는 미국 대통령 닉슨이 중국을 방문한 사건이었다.당시만 해도 반공은 일종의 생활규범이었다. 고교 입시에서 동점자가 나오면 반공도덕 점수로 결정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모택동을 만나러 갔으니 사람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신문도 떠들썩했고 어른들도 수군거렸다."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고등학생이던 우리도 그 분위기를 느끼긴 했다.하지만 솔직히 말.. 2026. 6. 1.
대청에서 내려온 늙은 다리가 문제였다 설악산 대청봉을 향한무박 2일 산행이 시작됐다.밤 11시 30분, 서울 출발.졸음과 기대가 뒤섞인 버스 안에서나는 괜히 창밖만 오래 바라봤다.'회귀하는 이 차를 시간 안에 탈 수 있을까?'새벽 1시 20분.인제휴게소의 불빛은, 유난히 밝았다.편의점 한구석에서는컵라면들을 후루룩후루룩.그 냄새가 어찌나 좋던지순간 마음이 흔들렸다.후루룩 두 번에 온몸이 깨어날 것 같았다.하지만 참았다.몸에 안 좋다는 생각도 있었고,혹시라도 탈이 나 체력이 떨어질까 겁도 났다.그만큼 이번 산행만큼은반드시 성공하고 싶었다.새벽 2시 30분.한계령 도착.국립공원 문이 열리는새벽 3시까지 기다려야 했다.5월 하순인데도산바람은 차가웠다.얇은 점퍼를 덧입었는데도몸이 먼저 떨렸다.새벽 3시.드디어 산행 시작.랜턴 불빛들이개미 떼처럼 산길.. 2026. 5. 26.
대청봉 무박산행, 5분 차이로 버스를 놓치다 지난 5월 22일, 안내산악회를 통해 설악산 대청봉을 다녀왔습니다. (한계령~대청봉~백담사 코스)모바일로 보시는 분들을 위해 핵심 타임라인과 주말 산행 코스를 짧고 명확하게 공유합니다. 출발 전에 같은 버스에서 한계령에 내릴 수도 있고, 오색 입구에서 내릴 수도 있고, 그냥 앉아 있으면 설악동 소공원으로 가는 것. 제가 노인이 되다 보니까, 어디서 오르는 게 조금이라도 고생을 덜 할까?고민을 해봤습니다만. 작년 산행 때 대청봉을 85번 올랐다는 중년을 만났습니다.제 일행은 아니었지만, 지나면서 떨어뜨리고 가는 말이"85번 중 오색에서 오른 3번 빼고, 전부 한계령에서 올랐노라." 이게 웬 떡정보냐구 꿍쳐두었던 말이 기억나, 한계령으로 들머리를 잡은 겁니다.⏱️ 산행 타임라인 및 코스23:30 서울 전.. 2026. 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