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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룻배와 행인, 그리고 따스한 정 1. 서른 해의 세월을 아우르는 울타리 어제(2026.7.18)는 복달임을 겸한 동창회가 있었다.동창회라고 하면 으레 같은 학년끼리 만나는 모임을 떠올리지만, 우리 모임은 다르다. 안양에 사는 Y고교 출신들의 모임이라 선배와 후배가 한자리에 모인다.위로 15년 선배님부터 아래로 15년쯤 후배까지, 서른 해의 세월을 아우르는 이들이 한 울타리 안에서 어울리는 것이다.내 나이 올해로 일흔 하나. 학번으로 쳐도 중간 지점인데, 어느새 나는 대접받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은퇴자라는 이유로 회비는 조금 내고 맛있는 음식은 실컷 얻어먹는다. 비용의 대부분은 현역으로 활동하는 예순 초중반의 후배들이 기꺼이 짊어진다.처음에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마음보다 고마움이 더 크다.생각해 보면 참 아름.. 2026. 7. 21.
[고교얄개⑯] 버스 안내양 누나들 미안하옵니다 1. 50년 전 버스 안의 얄개들 50여 년 전의 얄개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시내버스 안내양에게 '누나'라고 부른 축과 '언니야'라고 부른 축으로. 전 축들은 교복에 꽂힌 학년 배지대로 나이를 인정하는 아이들이고 후 축들은 마치 몇 년씩 꿇어서 나이는 많다고 우기는 구레나룻들이다. 전 축들은 버스표 냈냐고 물으면 고분고분 내던 자세를 재연해 보이고 후 축들은 기분 나빠 내릴 테니 내지도 않은 버스표 내놓으라고 코털을 날린다. 2. 회수권 한 장에 실린 얄개들의 장난버스 탈 때는 삼삼오오 사이좋게 오르는 게 좋다. 회수권은 뒷 녀석이 모두 낼 것처럼 마구 떠들며. 안내양은 각자 내고 타라고 가슴으로 막는다. 그러면 뒤에서 떠밀린 척, 맨 앞 녀석이 가슴으로 뚫는다. 맨 앞 역할은 서로 하고 싶어.. 2026. 7. 20.
가난과 슬픔이 머물던 그 시절 그 방 서울 은평구 신사동 반지하 18평의 집에서, 숨 막히던 여덟 명의 아침방이 없어 거실 소파에서 1년 내내 잠을 잔 동생이 아침 밥상 앞에 앉았다. 이윽고 2번 방에서 고3이던 장조카와 고1인 조카딸이 나와 수저와 저분을 배분했다. 셋 다 출근과 등교를 서두를 시간이다.3번 방에서 낯선 처자 하나가 수건을 들고, 앉은뱅이 밥상을 돌아 화장실로 간다. 이 시간엔 좀 피해 주었으면 싶었지만 그녀 역시 출근해야 한다. 주방 옆에 매우 작은 3번 방에 세 들어 살던, 낯선 그녀 역시 피해자였다.노부부와 자기만 살게 될 줄 알고 반지하에 이사를 왔는데, 며칠 뒤에 장남 가족이 들이닥치더니, 경주에서 왔다는 막내아들까지 함께 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1번 방에 노부부 2명, 2번 방에 장남 가족 4명, 3번 방에 .. 2026. 7. 14.
세월이 흘러도 서른을 넘지 못하는 내 동생 올해로 내 나이 일흔둘이다. 거울을 볼 때마다 부쩍 늘어난 흰머리가 눈에 밟히고, 계단을 오를 때면 무릎이 먼저 제 나이를 고한다. 흐르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나이를 배달해 준다.그런데 우리 집에는 이 엄연한 세월의 법칙을 비켜 간 식구가 하나 있다. 세 살 아래인 내 동생. 그 녀석은 마흔 해가 넘도록 여전히 스물아홉 살 청춘에 머물러 있다. 살아있다면 올해 예순아홉 살이렷다. 동생이 중학교 졸업반이던 겨울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형, 나 고등학교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가장도 아니고 아버지도 아닌, 그저 세 살 많은 고등학생에게 의지하던 인생의 첫 질문이었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 인문계에 진학해 대학을 꿈꿀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목수이신 아버지의 무.. 2026. 7. 13.
할머니, 워디갔다오세유? 인천국제공항은 24시간 깨어있습니다.국제공항은 떠나고 들어오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죠.한밤중에도 살아있는 곳입니다. 지금 쓰는 얘기는 20여 년 전 기억이니지금은 달라진 장면도 많을 겁니다. 분위기가 들떠 있거나포옹을 오래 나누는 사람들은 출국자들이고,피곤해 보이거나 말이 없는 사람들은 입국자들입니다.어느 비행기에든우리나라 60세 전후의 아주머니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산파들이지요. 그때 그분들은 질서에 조금 미숙하셨지만지금은 달라지셨겠지요.조용하던 입국장이 시끌시끌해지면 영락없이우리나라 비행기가 도착한 겁니다. 지방에서 온 단체 여행자들은 같은 색의 모자를 쓰거나같은 색의 조끼를 입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체가 주는 소속감과 안전의 도구이며,낯선 외국에서도 보호받는 수단이 되지요... 2026. 7. 7.
[응답하라 1972 ⑮] 그땐 우리도 우리가 한심했다 고2 얄개시절 그러니까 50여 년 전, 우리가 저지른 일 중에 범죄인 줄 알고 저지른 일이 딱 하나 있다.정말 장난으로 말해본 거였는데, 그 말을 들은 두 친구가 착 달라붙는 바람에 우리의 모의는 급속히 합의됐다. 셋이서 시험지를 훔치기로 한 것이다.시험 기간 중엔 각자의 교실을 도서관 삼아, 그곳에 남아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많았다. 밤이 이슥해지면서 불 켜진 교실이 몇 안 남았을 때, 우리는 겁도 없이 2층 교무실을 털었다.그것은 타이거마스크의 박달 몽둥이 때문이다.그는 수학 선생이지만 마스크를 안 써도 레슬링의 반칙왕 같이 생긴 남자인데, 시험문제 하나 틀리는 데 무조건 한 대씩 때렸다.다른 애들은 몇 개 틀렸나를 걱정했지만, 운동선수였던 나는 몇 개 맞을까가 궁금한 처지였다. 그러니 몽둥이 앞에 도.. 2026.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