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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서 건넨 이야기 사당역에서 4호선을 타고 가며 잠시 고민에 빠집니다. 남대문까지 들러볼까 싶었지만, 도보로 이동하기엔 좀 먼 길이라 서울역을 지나쳐 회현역에서 내렸습니다. 남대문은 다음 기회로 미뤄두고 곧장 남산공원 입구로 향합니다. 커다란 공원 간판이 반갑게 맞아주고, 정돈된 오르막길을 따라 오늘의 산행을 시작합니다.산입 초입부터 오늘의 목적지인 서울 타워를 보면서 오릅니다.이 언덕을 오르면 왼쪽에 김유신 장군이 기마 동상에 앉아 눈을 부릅뜨고 있습니다. 5분쯤 더 걸어 올라가니 옛 어린이회관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지금은 관공서 교육관으로 쓰이고 있지만, 빛바랜 건물 모퉁이마다 아련한 지난날의 기억이 스쳐갑니다. 성곽길을 따라 조용히 걸음을 옮깁니다. 나지막한 오르막 끝에서 늠름하게 서 있는 김유신 장군의 기마 동.. 2026. 9. 22.
한복 옷고름에 담긴 추억 수필가 초년병 시절, 제 이야기엔 아내가 많았습니다. 25년 전이면 4 반세기 전쯤이죠? 그때까지만 해도 젊었던 아내는 제법 예뻤습니다. '제눈에 안경' 역할인 줄은 알지만... 지금도 명절 때 한복 차림의 그녀를 보면, 옛 시절 나누었던 설렘과 고백들이 마음을 흔들곤 합니다.닷새간의 냉전을 끝낸 자줏빛 저고리그날 아침은 눈부셨습니다.햇살은 팔랑대는 아내의 옷고름에 자줏빛으로 부서졌습니다. 미용실 가는 돈이 아깝다며 기른 머리를 쪽쪄 올리고, 자주색 저고리에 연보라 치마의 아내가 참 예뻐 보였습니다.결혼 20년 동안 이런 외출은 손가락으로 셀만큼 드물었죠. 한복을 입은 아내는 또 다른 새로움으로 다가왔고, 오랜 세월 무던히 순종해 준 아내에게 난 몇 점짜리 남편일까 스스로 묻기도 했습니다.돌아보면 20년.. 2026. 9. 21.
세상만사 막걸리가 좋아 막걸리 예찬 -휘준- 탁주라 말 마시라 요거트가 따로 없네열흘에 스무 병씩 고이 담겨 도착하니찬장에 쌓인 술 보면 부럽잖다 임금님도 고1 때 배웠지. 고시조는 종장 첫음절만 맞춰주면 누구도 시비 걸지 않는다구. 막걸리에 폭 빠져 한시(漢詩)도 한 수 지어봤네 막걸리 예찬(濁酒禮讚)莫謂濁酒劣 (막위탁주열) — 탁주라 깎아내려 말하지 마시라 酸乳豈異哉 (산유기이재) — 요구르트와 맛과 멋이 무엇이 다르리 十日二十瓶 (십일이십병) — 열흘마다 스무 병씩 정성스레 찾아오니 棧上積玉液 (잔상적옥액) — 찬장 위에 고인 옥액 가득 쌓인 모습에 帝王何足羨 (제왕하족선) — 제왕의 부귀인들 어찌 부러우리오 막걸리 변주곡, 요즘은 주전자에 따라 마신다 냉장고 위 찬장에 가지런히 들어찬 흰 병 스무 개를 바라보고 있노.. 2026. 9. 15.
헉! 내 누드 20년 전쯤, 영종도 인천 공항에 근무할 때의 이야기. 서울 사람들에겐 출퇴근 거리가 먼 편이어서, 하루 근무하고 이틀 놀던 때의 기억이다. 24시간 근무 48시간 휴무. 하루 결근하면 5일간 동료들을 만날 수 없다는 게 단점이자 장점?8시간 근무하고 16시간 쉬던 일반 근무자와 같은 조건인데도, 우리는 매일 노는 듯이 보였기에 그 제도가 오래가진 못했다. 어쨌든 24시간 근무 때는 직장에서 샤워를 두 번 하게 된다. 술이 덜 깨어 출근한 날엔 아침부터 샤워장엘 가기도 했다. 그것은 농땡이라기보다는 맑은 정신을 찾아 업무의 효율을 높이려는 노력이라고 봐주었다. 공항의 직원용 샤워장은 여러 단체가 같이 써서 크고 시설이 좋아, 아무것도 들고 갈 필요가 없는 곳.옷장은 개방식 네모 칸이어서 탈의실에.. 2026. 9. 14.
한반도 배꼽 마니산과 외포리 2026년 9월 5일 토요일 아침, 강화도 마니산을 향해 출발했다. 오전 11시 반 화도 공영주차장에 도착. 주말 산행은 좋아하지 않지만 미세먼지, 초미세먼지가 매우 좋은 날씨여서, 서해 바다 풍광을 보고 싶어 나선 길이었다.마니산의 내력마니산(472,1M)의 옛 이름은 '마리산'이다. '마리'는 '머리'의 옛말로 '겨레의 머리가 되는 성스러운 산'이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는 강화도를 한반도의 중심에 자리한 배꼽으로 생각했고, 마니산 정상 참성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강화 사람들은 마니산 정상에서 새해 첫 일출을 감상하며 호연지기를 길렀다고 한다. 서해안에 있지만 마니산 일출 트레킹은 성스러운 산을 고귀하게 만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인 셈이다. 강화도를 생각하면 안쓰러운 면도 있다. 과거.. 2026. 9. 8.
<고교얄개 ⑰> 삥땅 인생 고교 2학년이 된다는 것은학년이 하나 올라간다는 건 매우 신나는 일이다. 득실거리던 선배들 절반이 떠나고 그만큼 새로 생긴 후배들 앞에서 꺼벙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2학년이 된 때, 우리에겐 커다란 혼란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미국 대통령 닉슨이 중공을 방문해서 공산 맹주 모택동을 찾은 사건이다. 닉슨과 주은래의 사진도 연일 매스컴에 떠서 우방들이 혼란에 싸였는데, 우리의 경우 고교입시 때 동점자는 반공도덕 성적순으로 뽑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요즘 같으면 입시요강 바꾸라고 난리 나지 않았겠나. 반공이 모든 걸 이기던 시대였으니 중국에 간 닉슨은 충격 그 자체였다. 목욕탕 요금이 꺼엉~충 뛰었다 두 번째는 3월부터 목욕탕 요금이 62.5%나 오른 것이었다. 물론 이 변화를 사회적 혼란으로 .. 2026.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