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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에 등 떠밀려, 상원사에서 비로봉으로 상원사 마당을 나서며, 나는 잠시 발걸음을 늦추었다.바람이 먼저 길을 걷고 있었다.사방이 단풍이었다.곱다는 말로는 조금 모자랐다.빛이 나무에 붙어 있는 듯했다.붉은 잎은 붉은 대로,노란 잎은 노란 대로서로 양보도 없이 제 색을 뽐내고 있었다.나는 괜히 한 번 더 둘러보았다.이 길이 오늘의 시작이라는 것이, 조금 아까웠다.비로봉은 아직 멀다.하지만 마음은 이미 반쯤 올라가 있었다.이쯤에서,잠시 그날의 풍경을 내려놓는다. 쭌쭌튜브2026년 4월 17일www.youtube.com두로령을 지나 상원사로 돌아오는 길,다리 근육보다 마음이 먼저 피로를 느낍니다.하지만 내려오면서 비로소 보이는 풍경,오르면서 놓쳤던 바람결과 낙엽의 색은오늘 산행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입니다.다음에 올 가을에도 나는 다시 이 길을 걸.. 2026. 4. 7.
2024년 대청봉 3차 산행의 첫 번째 칠순 할배 단독산행 2024년에 대청봉 세 번 오르다.그 첫 산행 5월 31일한계령에서 올라 대청봉 정상석과 악수하고 안아보고 오색으로 내려오다. 바람이 먼저 길을 열어주던 날이었다.발보다 숨이 앞서가고, 생각은 자꾸 뒤처지던 그날. 영상 속 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걷고 있지만,사실은 한 걸음마다 작은 결심을 다시 하고 있었다. 화면 속 바람은 조금 얌전하다.실제 그날의 바람은, 내 등을 몇 번이나 떠밀었다. 그래서였을까.나는 끝내 내려왔고, 또 한 번 올라갈 이유를 얻었다. 같은 길을, 짧은 영상으로도 남겼습니다. 2026. 4. 6.
[응답하라 1972 ⑩] 짜식들아 옥짜옥짜 하지마라, 자옥씨다! 교실 문을 열자마자 녀석들의 짓궂은 야유가 귓전을 때렸다. "야, 쭌! '옥짜'는 찾았냐? 이름이 옥자면 어떠냐, 얼굴만 예쁘면 됐지! 안 그래?" 70년대 그 시절, 이름 끝에 '자'가 들어가는 것은 흔하디 흔한 이름이었다. 영자, 순자, 숙자, 그리고 옥자까지. 정작 본인들은 여자친구 하나 없는 주제에,녀석들은 제멋대로 '옥자'라 단정 지으며 낄낄거렸다. 당시 거리 전파사 스피커에서는 나훈아의 '애정이 싹트는 시절'이 간드러진 음절로 흐르고 있었다. 가사처럼 내 마음에도 무지개 같은 설렘이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녀석들의 놀림은 그 무지개에 흙탕물을 끼얹는 것 같아 속상했다. 나는 질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결코 지지 않았다.내 책가방 안쪽 깊숙한 주머니에 보물처럼 간직된 쪽지, 넥타이.. 2026. 3. 31.
[응답하라 1972 ⑨] 또 다른 그녀의 이름은 '옥' 기다리고 기다리던 농구 스타의 편지는 오지 않고, 내 앞엔 새로운 여학생이 등장했다. 중1 학기 초, HR 시간에 특활반 고르기가 있었다. 거기서 나의 선택은 참으로 엉뚱했다. 그때 나는 방송반, 영어반 이런 공부동아리를 골랐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내 인생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국에서 하나뿐인 실내 수영장에 당일 무료로 가볼 수 있다는 수영반을 택했다. 수영반은 선수가 되는 수영부가 아니고 특활반일뿐이라는 선생님의 설명을 그대로 믿은 것이다. 공짜로 실내 풀장 다니는 게 좋아, 수영반을 따라다니다 보니까, 어느 틈에 주전 선수가 되어있었다.그래서 고2 때 수영부가 해체될 때까지, 공부는 물 건너간 돌팍이었는데 운동선수로선 주축이 되어 큰소리 치고 있었다. .. 2026. 3. 30.
[응답하라 1971 ⑧] 얄개들이 깔아뭉갠 선생님, 아으 다롱디리 "빛바랜 흑백 사진 속, 말타기를 하며 환호하던 얄개들. 그날의 무너짐이 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착륙이 될 줄은 그때 아무도 몰랐습니다." 1971년 가을 소풍날,동구릉에서 말타기가 벌어졌다.어느 문인석에 기대 내가 마부로 자리를 잡자, 눈치 빠른 국어쌤이 소매를 걷어붙이셨다. "내가 말 할게. 나를 타봐라 무너지나!" 선생님은 내 가랑이 사이로 머리를 쑥 밀어 넣으셨다. 말 등 위에 친구 둘이 엉덩이를 흔들며 말을 괴롭혔다.이 장난이 사고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말이 된 선생님의 허리는 이미 활처럼 휘어 있었다. 사건은 우리 반 '키 1 짱' 장다리 녀석이 슬쩍 올라타는 순간 벌어졌다.육중한 무게에 '인간 말'은 비명도 못 지르고, 그대로 짜부가 되어 버렸다. 선생님을 깔아뭉갠 얄개들은 환호성.. 2026. 3. 27.
[응답하라 1972 ⑦] (편지) 연숙에게 연숙, 이 편지 농구부로 보내는 이유는 학년을 몰라서이구. 예쁜 여학생 이름으로 보내는 건 나의 센스야. 막히면 운명이고, 전해지면 행운이지. 나 요즘 농구에 폭 빠졌어. 이정도 운동량이면 키도 더 클 거야. 우리 학교는 코트가 아스팔트라서 비만 그치면 바로 할 수 있거든. 선수들은 강당체육관에서 뛰고, 우리는 땡볕에서 헉헉 대는데, 헉헉 멤버들 모두 그대 팬이야. 숙, 그대 만난 후부터 키는 크고 봐야 한다는 욕심이 생겼어. 키가 비슷한 학생들 틈을 지날 땐, 내가 더 큰 척하려고 뒤꿈치를 들고 다닌 적도 있었지. 이러다 보면 진짜 키가 더 잘 크지 않을까? 자나 깨나 키 클 생각, 앉으나 서나 키 180 그래도 키 크는 환상보다 그대 생각이 우선이긴 했어. 난 2학.. 2026.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