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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72 ⑥] 웃기는 얘기는 제목도 있어요 얘기 제목은 '고1 때의 학문 수준'입니다. 고1 때 교실의 첫 인상은 중학 때보다 좀 시끄럽다는 것이었습니다.동교 진학한 친구들이라도 그렇지, 학기 초엔 서먹한 분위기에 조용해야 맞지 않습니까? 그러나 반대였습니다.한참 지나서야 우리 반이 돌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기서 벗어나려면 시험을 잘 보는 수밖에 없었지요. 기말 고사 생물 시간이었습니다.아는 것부터 쓰고 모르는 건 나중에 고민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아는 게 깜빡 생각 안 날 때처럼 억울할 때가 없죠. 마지막까지 끌어안고 있던 문제의 답은 '항문'이었습니다. 한 문제라도 더 맞히겠다고 머리를 쥐어짜고 또 짜다가, 종소리와 함께 '똥구멍'이라 쓰고 나왔습니다.빈칸으로 놔둘 수는 없잖아요. 답안지가 걷히고 친구들의 웅성거림에서 정.. 2026. 3. 25.
[응답하라 1972 ⑤] 스타 미인 선수와 나란히 걷던 신당동 스타 선수 혼자 남은 서울역 버스정류장.버스에 오르려 할 때, 가방이라도 붙잡았어야 했는데 놓쳤어. 할 수 없이 버스까지 따라 탔지,눈치만 살피며 아무 말도 못 걸고 있는데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얼굴은 울긋불긋. 사람들이 많이 타자 그녀와 난 점점 더 가까워졌어. 버스 안에서 몸이 닿을 때도 있었지만, 내가 먼저 등을 돌렸어.아이구, 얼마나 떨었는지 짐작은 가겠지? 너무 센 상대를 찍은 거야. 코트에서 뛸 땐 작고 예뻤지만, 교복 입은 그녀는 너무 큰 모델이었어.‘포기하고 돌아갈까?’이런 생각을 왜 안 했겠어.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지, 얘깃거리는 만들어 가야 하잖아. 파이팅! 하며 등 두드려 준 친구들이 밉기까지 했어. 다시 마음을 잡았지만, 차 안에선 말을 못 붙였는데 어느새 그녀는 내렸어.나?.. 2026. 3. 24.
[응답하라 1972 ④] 우중충했던 남학교에, 여학생들이 우루루 1972년 가을 고2 때, 학교 실내 농구장에서 고교농구대회가 열린 것을 기억하십니까?장충체육관이 공사 중이었는지, 어느 날 갑자기 울긋불긋한 응원부대가 들이닥쳤습니다. 교문 두 개로 들이닥친 꼬마 숙녀들이 교정을 거닐며, 우중충했던 남학교는 생기가 돌았습니다. 정말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살만했습니다. 꿈인가? 파릇파릇 어린 나이에도,남녀는 어울려야 살만한 세상이란 걸 모르는 친구는 없었죠?고교 3년 동안 살만했던 시절은 딱 그 며칠이었습니다. 옥외 농구장을 쓰던 우리는 한 명의 농구 스타에게 폭 빠졌습니다.M여고 7번, 얼굴도 짱 예쁜데 농구 실력도 굉장했습니다. 꽁지머리 팔랑팔랑, 코트 가운데서 팀을 지휘하던 꼬마 선수에게 우리는 꽂혔습니다. 나중에 그 선수는 세계 선수권.. 2026. 3. 23.
[응답하라 1972 ③] 개교 이래 처음 있는 일 무서운 체육선생님의 미소 1972년 봄, Y고교 교정에도 개나리들이 사방에서 소곤댔었다.검정 교복들이 우글거리고, 뛰노는 선머슴 중에는 죄수들이 간혹 보였지만,학교는 노란빛 울타리가 감싸고 서서 교정다웠다. 간혹 여기저기 섞여있는 죄수들은, 두발 단속에 걸려 까까중머리로 등교한 놈들이다. 그 시대 얄개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머리 스타일은, 바지 밑단을 늘려 나팔바지를 만드는 일보다훨씬 중요한 문제였으므로, 빡빡머리가 되는 것은 크나큰 걱정거리였다. 교실 창가에서 나는 까까중들을 측은히 쳐다보며, 친구 따라 처음 간 교회를 생각했다.검게 윤이 나는 피아노 의자를 노랗게 물들인 연주자의 스커트, 스커트에 어울린 노란 머리띠. 개나리 빛 스커트가 잘 어울리는 여학생은, 내 .. 2026. 3. 22.
[응답하라 1972 ②] 걸레통, 지금 어디서 뭐하노? 그러니까 반백 년 전 이야기야. 선생님 중에는 교실에 오자마자 인사도 안 받고, 칠판으로 돌아서서 판서부터 하는 선생님이 계셨어.지리선생님이셨는데 별명은 지향사였지.'옥천 지향사' 설명만은 신들린 듯하셨잖아.정년이 가까우신 할아버지 선생님은노망 끼가 조금 있었으나, 판서 솜씨는 끝내주셨지. 20분쯤 쓰고 돌아서서 "빨리 베껴!" 하시곤,손가락의 분필가루를 입으로 요리조리 불면서, 5분 더 기다려주시고 5분쯤 설명하시던 선생님. 그렇게 두 번 하다 종이 울리면,마무리도 없이 그냥 사라지던 선생님. 어떤 땐 종소리를 환청으로 들으신 양설명도 안 하고, 그냥 나가시는 날도 있었어. 그 선생님은 귀도 조금 어두운 편이었으나,예절을 무척 중시한 노인이셨어.그래서 인사만 깍듯이 하면수업 중에 얼마든지.. 2026. 3. 21.
[응답하라 1972 ①] 벼랑 끝에서 빌린 아버지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는 분명 벼랑 끝에 서 있었다. 문득 떠오른 기억 하나. 아버지를 ‘빌렸던’ 날이 두 번 있었다.고등학교 시절 나는 싸움꾼은 아니었지만,주먹패들에게 기죽지 않고 다녔다. 교복 바지 대신 건빵 주머니가 달린,미군복을 입었던 복장 덕분도 있지 않았을까.중고 워커는 끈을 반만 맨 채 너풀너풀,학교건 시내건 동네건 너풀대며 다녔다.선생님께 몇 번이나 걸렸지만, 복장은 고칠 수가 없었다. 어머니께 “군복도 괜찮다, 군화도 괜찮다”라고 큰소리를 쳐버린 뒤였으니까. 바지나 신발 살 돈을 또 타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생활지도 선생님에게서 최후통첩이 왔다. “부모님을 모셔 올 것.” 하루를 사흘처럼 고민했다. 그리고 끝내, 학교 앞 탁구장으로 갔다.그곳 주인을, 아버지로 모셔가.. 2026. 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