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만필/고교얄개16

[응답하라 1972 ⑩] 짜식들아 옥짜옥짜 하지마라, 자옥씨다! 교실 문을 열자마자 녀석들의 짓궂은 야유가 귓전을 때렸다. "야, 쭌! '옥짜'는 찾았냐? 이름이 옥자면 어떠냐, 얼굴만 예쁘면 됐지! 안 그래?" 70년대 그 시절, 이름 끝에 '자'가 들어가는 것은 흔하디 흔한 이름이었다. 영자, 순자, 숙자, 그리고 옥자까지. 정작 본인들은 여자친구 하나 없는 주제에,녀석들은 제멋대로 '옥자'라 단정 지으며 낄낄거렸다. 당시 거리 전파사 스피커에서는 나훈아의 '애정이 싹트는 시절'이 간드러진 음절로 흐르고 있었다. 가사처럼 내 마음에도 무지개 같은 설렘이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녀석들의 놀림은 그 무지개에 흙탕물을 끼얹는 것 같아 속상했다. 나는 질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결코 지지 않았다.내 책가방 안쪽 깊숙한 주머니에 보물처럼 간직된 쪽지, 넥타이.. 2026. 3. 31.
[응답하라 1972 ⑨] 또 다른 그녀의 이름은 '옥' 기다리고 기다리던 농구 스타의 편지는 오지 않고, 내 앞엔 새로운 여학생이 등장했다. 중1 학기 초, HR 시간에 특활반 고르기가 있었다. 거기서 나의 선택은 참으로 엉뚱했다. 그때 나는 방송반, 영어반 이런 공부동아리를 골랐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내 인생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국에서 하나뿐인 실내 수영장에 당일 무료로 가볼 수 있다는 수영반을 택했다. 수영반은 선수가 되는 수영부가 아니고 특활반일뿐이라는 선생님의 설명을 그대로 믿은 것이다. 공짜로 실내 풀장 다니는 게 좋아, 수영반을 따라다니다 보니까, 어느 틈에 주전 선수가 되어있었다.그래서 고2 때 수영부가 해체될 때까지, 공부는 물 건너간 돌팍이었는데 운동선수로선 주축이 되어 큰소리 치고 있었다. .. 2026. 3. 30.
[응답하라 1971 ⑧] 얄개들이 깔아뭉갠 선생님, 아으 다롱디리 "빛바랜 흑백 사진 속, 말타기를 하며 환호하던 얄개들. 그날의 무너짐이 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착륙이 될 줄은 그때 아무도 몰랐습니다." 1971년 가을 소풍날,동구릉에서 말타기가 벌어졌다.어느 문인석에 기대 내가 마부로 자리를 잡자, 눈치 빠른 국어쌤이 소매를 걷어붙이셨다. "내가 말 할게. 나를 타봐라 무너지나!" 선생님은 내 가랑이 사이로 머리를 쑥 밀어 넣으셨다. 말 등 위에 친구 둘이 엉덩이를 흔들며 말을 괴롭혔다.이 장난이 사고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말이 된 선생님의 허리는 이미 활처럼 휘어 있었다. 사건은 우리 반 '키 1 짱' 장다리 녀석이 슬쩍 올라타는 순간 벌어졌다.육중한 무게에 '인간 말'은 비명도 못 지르고, 그대로 짜부가 되어 버렸다. 선생님을 깔아뭉갠 얄개들은 환호성.. 2026. 3. 27.
[응답하라 1972 ⑦] (편지) 연숙에게 연숙, 이 편지 농구부로 보내는 이유는 학년을 몰라서이구. 예쁜 여학생 이름으로 보내는 건 나의 센스야. 막히면 운명이고, 전해지면 행운이지. 나 요즘 농구에 폭 빠졌어. 이정도 운동량이면 키도 더 클 거야. 우리 학교는 코트가 아스팔트라서 비만 그치면 바로 할 수 있거든. 선수들은 강당체육관에서 뛰고, 우리는 땡볕에서 헉헉 대는데, 헉헉 멤버들 모두 그대 팬이야. 숙, 그대 만난 후부터 키는 크고 봐야 한다는 욕심이 생겼어. 키가 비슷한 학생들 틈을 지날 땐, 내가 더 큰 척하려고 뒤꿈치를 들고 다닌 적도 있었지. 이러다 보면 진짜 키가 더 잘 크지 않을까? 자나 깨나 키 클 생각, 앉으나 서나 키 180 그래도 키 크는 환상보다 그대 생각이 우선이긴 했어. 난 2학.. 2026. 3. 26.
[응답하라 1972 ⑥] 웃기는 얘기는 제목도 있어요 얘기 제목은 '고1 때의 학문 수준'입니다. 고1 때 교실의 첫 인상은 중학 때보다 좀 시끄럽다는 것이었습니다.동교 진학한 친구들이라도 그렇지, 학기 초엔 서먹한 분위기에 조용해야 맞지 않습니까? 그러나 반대였습니다.한참 지나서야 우리 반이 돌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기서 벗어나려면 시험을 잘 보는 수밖에 없었지요. 기말 고사 생물 시간이었습니다.아는 것부터 쓰고 모르는 건 나중에 고민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아는 게 깜빡 생각 안 날 때처럼 억울할 때가 없죠. 마지막까지 끌어안고 있던 문제의 답은 '항문'이었습니다. 한 문제라도 더 맞히겠다고 머리를 쥐어짜고 또 짜다가, 종소리와 함께 '똥구멍'이라 쓰고 나왔습니다.빈칸으로 놔둘 수는 없잖아요. 답안지가 걷히고 친구들의 웅성거림에서 정.. 2026. 3. 25.
[응답하라 1972 ⑤] 스타 미인 선수와 나란히 걷던 신당동 스타 선수 혼자 남은 서울역 버스정류장.버스에 오르려 할 때, 가방이라도 붙잡았어야 했는데 놓쳤어. 할 수 없이 버스까지 따라 탔지,눈치만 살피며 아무 말도 못 걸고 있는데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얼굴은 울긋불긋. 사람들이 많이 타자 그녀와 난 점점 더 가까워졌어. 버스 안에서 몸이 닿을 때도 있었지만, 내가 먼저 등을 돌렸어.아이구, 얼마나 떨었는지 짐작은 가겠지? 너무 센 상대를 찍은 거야. 코트에서 뛸 땐 작고 예뻤지만, 교복 입은 그녀는 너무 큰 모델이었어.‘포기하고 돌아갈까?’이런 생각을 왜 안 했겠어.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지, 얘깃거리는 만들어 가야 하잖아. 파이팅! 하며 등 두드려 준 친구들이 밉기까지 했어. 다시 마음을 잡았지만, 차 안에선 말을 못 붙였는데 어느새 그녀는 내렸어.나?.. 2026. 3.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