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필/고교얄개16 [고교얄개⑯] 버스 안내양 누나들 미안하옵니다 1. 50년 전 버스 안의 얄개들 50여 년 전의 얄개들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시내버스 안내양에게 '누나'라고 부른 축과 '언니야'라고 부른 축으로. 전 축들은 교복에 꽂힌 학년 배지대로 나이를 인정하는 아이들이고 후 축들은 마치 몇 년씩 꿇어서 나이는 많다고 우기는 구레나룻들이다. 전 축들은 버스표 냈냐고 물으면 고분고분 내던 자세를 재연해 보이고 후 축들은 기분 나빠 내릴 테니 내지도 않은 버스표 내놓으라고 코털을 날린다. 2. 회수권 한 장에 실린 얄개들의 장난버스 탈 때는 삼삼오오 사이좋게 오르는 게 좋다. 회수권은 뒷 녀석이 모두 낼 것처럼 마구 떠들며. 안내양은 각자 내고 타라고 가슴으로 막는다. 그러면 뒤에서 떠밀린 척, 맨 앞 녀석이 가슴으로 뚫는다. 맨 앞 역할은 서로 하고 싶어.. 2026. 7. 20. [응답하라 1972 ⑮] 그땐 우리도 우리가 한심했다 고2 얄개시절 그러니까 50여 년 전, 우리가 저지른 일 중에 범죄인 줄 알고 저지른 일이 딱 하나 있다.정말 장난으로 말해본 거였는데, 그 말을 들은 두 친구가 착 달라붙는 바람에 우리의 모의는 급속히 합의됐다. 셋이서 시험지를 훔치기로 한 것이다.시험 기간 중엔 각자의 교실을 도서관 삼아, 그곳에 남아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많았다. 밤이 이슥해지면서 불 켜진 교실이 몇 안 남았을 때, 우리는 겁도 없이 2층 교무실을 털었다.그것은 타이거마스크의 박달 몽둥이 때문이다.그는 수학 선생이지만 마스크를 안 써도 레슬링의 반칙왕 같이 생긴 남자인데, 시험문제 하나 틀리는 데 무조건 한 대씩 때렸다.다른 애들은 몇 개 틀렸나를 걱정했지만, 운동선수였던 나는 몇 개 맞을까가 궁금한 처지였다. 그러니 몽둥이 앞에 도.. 2026. 7. 6. [응답하라 1968 ⑭] 아아 그때 그 감자 1968년은 제가 중학생이 된 해입니다. 신입생의 특징은 새 교복이죠. 헐렁하게 조금 큰 교복과 모자까지 조금씩 컸던 꼬마들. 새 책가방을 들고 오전 수업만 마치면 동대문 수영장으로 붙들려 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온몸의 힘이 다 빠질 때까지 수영을 배웠습니다. 체벌에 대한 긴장과 혹독한 훈련으로 늘 허기가 졌었죠.몸이 파김치가 되어 수영장을 나서면 호떡, 냉차, 구운 감자를 파는 리어카가 즐비했습니다. 축구장 뒷길부터 지금의 전철역까지 먹거리들이 띄엄띄엄 늘어서 있었습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 구운 감자가 석양빛에 번들거리면 왜 그리도 먹고 싶었는지 모릅니다.첫 집을 참고 지나쳐도 버스정류장에 가려면 그런 리어카를 십여 개나 더 지나야 했습니다. 사방에서 아주머니들이 불렀습니다."학생, 회수권도 받.. 2026. 6. 29. [응답하라 1972 ⑬] ♪얼굴 마주 보며 쌩끗♬ 그때 그 시절 '고교얄개'의 추억 오래된 서랍을 정리하다 보니 문득 빛바랜 기억 하나가 고개를 듭니다. 50여 년 전, 자옥이를 처음 만난 곳은 달콤한 버터 향이 훅 끼쳐오던, 종로의 한 제과점이었습니다. 당시 제과점은 우리 같이 가난한 고등학생에겐 별세계였죠.종로 제과점수영이란 운동은 칼로리 소모가 매우 큰 운동이다. 연습이 끝나고 수영장을 나설 땐 늘 뱃속에 거지가 든 것처럼 배가 고팠지만, 그날만큼은 눈앞의 단팥빵보다 맞은편에 앉은 자옥이가 더 신경 쓰였다. 나는 자꾸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며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쪽지를 한 달이나 늦게 봤다니까. 내가 원래 뒤늦게 시작한 공부에 너무 빠져있다 보니, 가방 깊숙한 곳은 잘 안 봐서...”사과가 세번 째 겹치자 자옥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저었다.“난 내가 차인 줄 알.. 2026. 6. 22. [응답하라 1972 ⑫] 아버지보다 중요했던 탁구장 주인 아저씨 내 인생에서 아버지를 빌렸던 두 번의 날안녕하세요. 월화만필입니다.오늘은 제 고등학교 시절,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지면서도 웃음이 나는 철없던 얄개 시절의 추억 하나 꺼내어 봅니다.제 인생에서 아버지를 딱 두 번 '빌렸던' 날의 이야기입니다.고교 시절, 싸움꾼이 아닌 내가 주먹패들에게 기죽지 않고 다닌 것은 불량한 복장 덕분도 있었다.바지는 건빵 주머니를 떼어 낸 미군 전투복을 염색해서 입고 워커를 끌고 다녔는데, 선생님께 몇 차례 걸려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엄마한테 워커도 괜찮다고 속이고 산 것이니, 구두나 교복 바지 살 돈을 또 타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생활지도 선생님에게서 최후통첩이 왔다.‘부모님을 모셔 올 것’하루를 사흘처럼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학교 앞 탁구장 주인을 아버지로 꾀는 데 성공했다.. 2026. 6. 15. [응답하라 1972 ⑪] 얄개들의 첫 삥땅은 목욕탕비 고등학교 2학년이 된다는 건 꽤 신나는 일이었다.무엇보다도 선배들의 절반이 졸업해 나갔고, 갓 입학한 후배들이 그 자리를 채웠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막내가 아니었다. 괜히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후배들을 만나면 이유 없이 걸음걸이도 달라졌다. 두 가지 큰 변화그 무렵 우리 사회에는 두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하나는 미국 대통령 닉슨이 중국을 방문한 사건이었다.당시만 해도 반공은 일종의 생활규범이었다. 고교 입시에서 동점자가 나오면 반공도덕 점수로 결정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모택동을 만나러 갔으니 사람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신문도 떠들썩했고 어른들도 수군거렸다."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고등학생이던 우리도 그 분위기를 느끼긴 했다.하지만 솔직히 말.. 2026. 6. 1.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