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월화만필10

도랑 하나 건너서 동창회원 수첩고교 졸업 30년 만에 동창회원 수첩이 나왔다. 사진과 연락처, 직장 등이 실렸다.사진의 반 이상은 거리에서 스쳐도 몰라볼 얼굴들이다. 내 사진 밑에 달린 주소가 관공서인 덕에 졸업 후 처음 걸려 오는 전화도 있었다. 기업체 간부이거나 사업주인 친구들이 법규를 물어온 전화였다. 내 조그만 지식이 도움이 될 때면 그동안 왜 연락이 없었느냐, 어떻게 지냈냐고 바짝 다가오기도 했다. "공무원 생활 다 그렇지 뭐."하고 얼버무렸지만 친했던 친구에겐 다르다."짜식아! 나 인마 문인 됐다."라며 자랑도 했다. 얼마나 어쭙잖은가. 내세울 거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딴엔 엄청 노력해서 얻은 자격이라 생각했다.그런데 그렇게 봐주는 사람이 적은 세상을 향한 반발이기도 했다. 그러면 그들의 은근한.. 2026. 8. 31.
제주에 살다, 멍든 2달 2023년에 속초 한 달 살기 2024년에 제주 한 달 살기 2025년에 제주 두 달 살기 올핸 강릉·부산 한 달 살기 작년에 제주 2달 살기 때그곳은 전철이 없으므로 경로 우대 카드의 이점이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관광지 입장료 할인뿐이었는데… 누군가 “제주도민이 되면 입장료 할인은 물론이고, 무료 교통카드에 택시비까지 나온다.” 오메 이게 웬 떡? 주소를 잽싸게 옮기고 공짜 카드 받아서 버스 실컷 타고 다녔는데, 택시비도 일 년치 16만 원쯤 카드로 받았습니다. 친구들에게 자랑했죠. 제주에 놀러 올 사람은 ‘한 달 살기’를 해도 주민등록을 옮기라. 70세 이상에겐 택시비도 준다. 나중에 안 거지만 택시비는 지출에 제한이 있었습니다. 하루에 편도 5천 원 이내로 두 번만 타기. 다 쓰지 못해서 절반은 .. 2026. 8. 25.
가난했던 아버지와 태릉선수촌 아버지!오늘은 30여 년쯤 거스른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2002년 9월에 쓴 글이므로 약 55년 전 이야기)제가 중3이 되던 봄, 국가대표 선수들만 묵을 수 있던 태릉선수촌에 입촌했던 이야기입니다.아버지는 관심 없는 듯 덤덤해하셨지만, 저는 세 가지 감동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첫째는 어마어마한 운동 시설이었고,둘째는 TV로만 보던 스타 선수들과 같이 생활하게 된 뿌듯함이었으며,셋째는 태어나서 처음 만난 '뷔페식당'이었습니다. 축구의 이회택 선수, 이세연 골키퍼, 서윤찬 선수... 투포환의 백옥자 누나와 같은 식당을 사용하기. 그래도 셋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뷔페식당입니다. 이상하게만 보였던 프라이드치킨과 양식 요리들, 밥이 아닌 것으로만 배를 채워도 되는 세상을 처음 보았습니다.무엇이든 .. 2026. 8. 24.
출근길, 아내의 '010-7644' 청문회 출근하려 현관문을 미는 내 팔 출근하려 현관문을 미는 내 팔을 아내가 잡았다, 차갑게 눈썹을 추키며."당신, 나 좀 봅시다."'봅시다?' 결혼하고 처음 들어보는 종결어미, 현행범이라도 잡은 말투다."당신, ‘칠육사사’가 누구야?"반말로 캘 정도면 대단한 증거라도 잡은 모양이다."뭔 소리야?"독 안에 든 쥐를 보는 고양이 눈빛으로 추궁이 이어졌다."'통화 가능한가요?'는 뭐고, '비가 오네요', '국화차 향기가 좋아서...' 이거 보낸 사람 같은 사람 아니야?"밤새 내 핸드폰을 뒤진 모양이다. 친구들한테 배운 대로 딱. 문학회 일정 때문에 가끔 문학회 일정 때문에 여류 문인들에게 문자를 받는다. 시간을 묻는 건 배려인데, 발신 번호가 반만 찍히기도 했다. 그때는 '센스 있네' 했었는데, 오늘은 거기에 발목.. 2026. 8. 17.
지지리도 사진 찍을 곳이 없던 ‘지지리골’ 2026년 8월 7일. 햇볕은 쨍쨍 새벽 5시에 일어나 이것저것 챙겨 사당역으로 갔습니다. 6시 50분 출발하는 산악회 버스를 타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촬영은 조금 다른 방식이므로 중요했고 전철 연착도 있을까봐, 앞의 앞차를 탔습니다. 풍경사진 잘 찍는 법을 책으로 익히기도 했고, 거기에 걸맞게 행선지 이름도 멋진 버스를 골랐습니다. 오늘 가볼 곳은 네 곳. ① 태백 지지리골 ② 정선 스카이워크 ③ 정선 5일장 ④ 평창 평화의 길 돌아올 땐 사진 풍년, 생각만 해도 기분이 들떴습니다. 안내산악회 하나가 내놓는 행선지는 일주일에 백 곳쯤 됩니다. 한국의 100대 명산, 산악회가 뽑은 200대 명산, 동해·남해·서해 해안선을 따라가는 코스, 이름도 생소한 오지 트레킹까지. 그 가운데 사진 찍기에 최적 코스라.. 2026. 8. 11.
오케바리, 그리고 코드 뽑힌 여자 지하철 문가에서 들은 버럭 소리"오케바리?"전철에 막 오르는데 누가 내 귀에다 소리를 버럭 질렀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문간에 선 한 청년이 핸드폰을 받고 있었고, 내 귀가 그의 입을 스친 꼴이었다.문이 닫히자 차 안이 조용해지고 그의 목소리도 줄어들었다. 그는 제 친구와 약속장소를 정하는 모양인데 '찾아올 수 있겠지?'라는 뜻으로 그 말을 외쳤던 것이다.외모도 준수한 청년이 여자친구의 머리칼을 연신 쓰다듬으며 말끝마다 ‘오케바리?’를 연발했다. 주위의 눈총도 모르는 체, 상스러운 말투로 전화에 열중하고 있는 젊은이 둘은 흔한 말대로 '한 쌍의 바퀴벌레' 같았다.전철이 서고 문이 열리자 엔진 소음이 커지고 그의 목소리도 다시 커졌다."XX놈아 앞 대가리에 타면 바로 2번 출구로 나온다니까. 앞 대가리에 .. 2026.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