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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필

도랑 하나 건너서

by 월화 희준 2026. 8. 31.

동창회원 수첩

고교 졸업 30년 만에 동창회원 수첩이 나왔다.
사진과 연락처, 직장 등이 실렸다.
사진의 반 이상은 거리에서 스쳐도 몰라볼 얼굴들이다.

도랑 하나 건너서 문인협회 속으로 (삽화: 정종해)

 내 사진 밑에 달린 주소가 관공서인 덕에 졸업 후 처음 걸려 오는 전화도 있었다.
기업체 간부이거나 사업주인 친구들이 법규를 물어온 전화였다.
 
내 조그만 지식이 도움이 될 때면 그동안 왜 연락이 없었느냐, 어떻게 지냈냐고 바짝 다가오기도 했다.
 
"공무원 생활 다 그렇지 뭐."하고 얼버무렸지만 친했던 친구에겐 다르다.
"짜식아! 나 인마 문인 됐다."라며 자랑도 했다.
 
얼마나 어쭙잖은가.
내세울 거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 딴엔 엄청 노력해서 얻은 자격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봐주는 사람이 적은 세상을 향한 반발이기도 했다.
그러면 그들의 은근한 견줌은 세 부류로 나타난다.
 
그것도 직업이냐?
돈은 되느냐?
운동선수였던 애가 대단한데?
 
 문인!
운문이나 산문을 쓰는 이를 통틀어 이르는 말.
 
나도 문인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는 내 속내는 따로 있었다.
나는 중고교 때 무인이었다.
공부와는 담쌓고 지낸 무인.
 
그 친구들이 시인과 소설가 중 어느쪽을 좋게 보는지 눈치 볼 필요 없이, 그냥 '문인의 숲' 속에 숨어들고 싶어서 였다.
그것이 기라성 같은 대선배님들의 그림자를 밟는 짓임을 알면서도.


 
겨우 도랑 하나 건너놓고

도랑을 건너, 이제 막 숲 언저리에 들어선 심정은 그리 밝지 못했고 지금도 여전하다.
겨우 도랑 하나 건너놓고, 건너서면 무언가 보이리라 생각했던 탓에 허탈감도 있다.
숲 가운데까지 가기는 훨씬 더 멀고 험한 길뿐이라는 사실 때문에.

(2002. 7. 한국문협 제24호에 실림 )

 그 당시 회원이 6,000여 명이던 한국문인협회, 머지않아 1만 명 시대가 된다고 했었다.
그 거대한 숲으로 무성해질 한국문협의 일원으로서, 커다란 나무들과 수려한 꽃들을 어떻게 살피고 배워야 할까.
 
'짜식'들이 많은 세상에서, 건너온 도랑을 다시 건너가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걸음마를 더 익혀야 한다.
졸필을 받아준 '文協'의 아량을 늘 기억하면서. 
 
 
"우리 이제♬ 새벽강을 보러 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