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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만필10

영종도에서, 내가 끝내 내려 서지 못한 갯벌이야기 데, 조금 수정·보완했습니다.> 지금 저는 끝이 안 보이는 활주로 앞에 서있습니다. 이 광활한 대지를 여럿 품고 있는 공항은 또 얼마나 크겠습니까?그러나 공항은 이 섬의 한 귀퉁이에 지나지 않습니다.섬을 둘러싼 바다는 얼마나 넓은지 한눈에 담을 수가 없습니다. 드넓은 해변이 어찌나 망망했는지 물이 썰리면 해안선은 아득히 물러납니다. 광활하게 드러난 뻘엔 물 자국마다 햇빛이 담겨 반짝반짝 거립니다. 저 햇빛을 밟아보고 싶은 충동은 출근 때마다 이는 생각입니다.그러나 한 번도 그리하진 못했습니다. 출근을 조금만 서두르거나 조금만 늑장을 부려도 될 법한데,그 짧은 틈을 내기가 참으로 고단합니다.무엇 때문에 쫓기듯 살아야 하는지요. 매일 오가면서도 해안도로에 잠시 내려섰다 간 적도 없으니 말입니다. 다시 바다.. 2026. 4. 27.
개떡 같은 세상에서 만난, 찰떡 아이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밖은 뜨거운데, 글 마감시간에 쫓기는 나는 컴퓨터 속에서 정신 없었다. 시립도서관 2층 남자화장실 첫 번째 칸에 앉으니 적나라한 그림 한 컷이 눈길을 끈다. '이거 그린 놈 대학생 아니다. 대학생이면 좀 더 잘 그렸어야지!' 촌평은 아쉬움을 외면당한 채 엄한 꾸지람을 달고 있다 '낙서하지 마. 세끼들아!' 누군가 빨간 볼펜으로 맞춤법도 지적했다 '↙틀렸음 새끼(○)' 빨간 글씨는 다시 길게 휘어진 화살표에 끌려가 굵은 사인펜으로 얻어맞았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 쉐끼들아!' 머리 위에서 쇠파이프를 타고 내린 찬물 한 통이, 푸하하 쓸려나가고 파란 창에 구름 반쪽 갸우뚱인다. 그래 어쩌면 아주 오래 전엔 '세끼'가 맞는 말이었는지도 모.. 2026. 4. 13.
[응답하라 1972 ②] 걸레통, 지금 어디서 뭐하노? 그러니까 반백 년 전 이야기야. 선생님 중에는 교실에 오자마자 인사도 안 받고, 칠판으로 돌아서서 판서부터 하는 선생님이 계셨어.지리선생님이셨는데 별명은 지향사였지.'옥천 지향사' 설명만은 신들린 듯하셨잖아.정년이 가까우신 할아버지 선생님은노망 끼가 조금 있었으나, 판서 솜씨는 끝내주셨지. 20분쯤 쓰고 돌아서서 "빨리 베껴!" 하시곤,손가락의 분필가루를 입으로 요리조리 불면서, 5분 더 기다려주시고 5분쯤 설명하시던 선생님. 그렇게 두 번 하다 종이 울리면,마무리도 없이 그냥 사라지던 선생님. 어떤 땐 종소리를 환청으로 들으신 양설명도 안 하고, 그냥 나가시는 날도 있었어. 그 선생님은 귀도 조금 어두운 편이었으나,예절을 무척 중시한 노인이셨어.그래서 인사만 깍듯이 하면수업 중에 얼마든지.. 2026. 3. 21.
[응답하라 1972 ①] 벼랑 끝에서 빌린 아버지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는 분명 벼랑 끝에 서 있었다. 문득 떠오른 기억 하나. 아버지를 ‘빌렸던’ 날이 두 번 있었다.고등학교 시절 나는 싸움꾼은 아니었지만,주먹패들에게 기죽지 않고 다녔다. 교복 바지 대신 건빵 주머니가 달린,미군복을 입었던 복장 덕분도 있지 않았을까.중고 워커는 끈을 반만 맨 채 너풀너풀,학교건 시내건 동네건 너풀대며 다녔다.선생님께 몇 번이나 걸렸지만, 복장은 고칠 수가 없었다. 어머니께 “군복도 괜찮다, 군화도 괜찮다”라고 큰소리를 쳐버린 뒤였으니까. 바지나 신발 살 돈을 또 타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생활지도 선생님에게서 최후통첩이 왔다. “부모님을 모셔 올 것.” 하루를 사흘처럼 고민했다. 그리고 끝내, 학교 앞 탁구장으로 갔다.그곳 주인을, 아버지로 모셔가.. 2026. 3.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