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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필

지지리도 사진 찍을 곳이 없던 ‘지지리골’

by 월화 희준 2026. 8. 11.

2026년 8월 7일. 햇볕은 쨍쨍

새벽 5시에 일어나 이것저것 챙겨 사당역으로 갔습니다. 

6시 50분 출발하는 산악회 버스를 타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촬영은 조금 다른 방식이므로 중요했고 전철 연착도 있을까봐, 앞의 앞차를 탔습니다. 풍경사진 잘 찍는 법을 책으로 익히기도 했고, 거기에 걸맞게 행선지 이름도 멋진 버스를 골랐습니다. 

오늘 가볼 곳은 네 곳.

① 태백 지지리골
② 정선 스카이워크
③ 정선 5일장
④ 평창 평화의 길

돌아올 땐 사진 풍년, 생각만 해도 기분이 들떴습니다.

안내산악회 하나가 내놓는 행선지는 일주일에 백 곳쯤 됩니다.

한국의 100대 명산, 산악회가 뽑은 200대 명산, 동해·남해·서해 해안선을 따라가는 코스, 이름도 생소한 오지 트레킹까지. 그 가운데 사진 찍기에 최적 코스라고 제가 고른 버스였습니다.

그날은 입추였는데, 서울은 100여 년 만에 최고 더위를 기록했다는 날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장비는 신발이 아니고 스마트폰과 삼각대였죠. 교회 홍보에 쓸 풍경을 많이 찍어 오라는 아내의 부탁을 모시고 가기 때문입니다.

“걱정 마. 사진 풍년에 본전은 뽑고도 남을 테니까.”

28인승 우등 버스의 본전은 거리에 따라 다르지만, 왕복 4~6만 원 선입니다. 행선지를 보면 본전은 금방 뽑히겠죠?

사당역을 출발한 버스는 약 네 시간을 달려 태백에 도착.

갈 때는 지루함이 없습니다만, 돌아올 때는 다릅니다. 볼 것 다 보고, 다리도 지치고, 눈꺼풀까지 무거워집니다. 슬쩍 잠을 청하게 되지요.



첫 목적지는 ‘지지리골’이었습니다


폐광 지역을 관광지로 꾸미면서 자작나무 숲을 조성한 곳이라는데, 왜 이름은 ‘지지리골’이라고 했지?

개울물은 철분 녹이 내려앉아 누런빛이 보기에 좋지 않았고, 옛 광부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 몇 점이 전부였습니다.

광부들이 멧돼지를 잡으면 개울가에서 구워 먹었는데, 그때 돌판에 고기를 굽는 소리가 "지지리" 나서 지지리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이름의 내력을 알고 나니 정감은 오히려 찌뿌둥해졌습니다. 2선으로 밀려 채택되지 않은 전설은 다음과 같았는데 저는 그게 더 좋았습니다.

'옛 화전민들이 지지리도 못 살아서 붙여진 이름 <지지리골>‘

사진은 한 장도 찍지 못했습니다. 두리번거리기만 했지 찍을 거리를 찾지 못한 채 두 시간을 걸은 겁니다.

그래도 산골이니 서울보다는 시원했을까요?

그늘 없는 길도 꽤 많았는데, 그 길도 부지런히 걸어야 버스 시간에 맞출 수 있었습니다.

시원한 버스에서 내려 1분만 걸어도 모자챙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던 날씨. 등산용 손수건으로 얼굴과 머리만 닦아도 금세 흥건, 선크림은 무용지물이던 날씨.

도대체 이 마을엔 왜 온 거지? 사방을 두리번거려도 답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지리골을 빠져나온 것은 오후 1시쯤. 땡볕에 배고픈 사람들에게 안내인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한 시간쯤 후에 정선 5일장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점심 드실 겁니다. 그런데 그전에 스카이워크를 들러야 합니다. 2~30분 걸립니다. 입장료가 2천 원인데 영수증은 이 고장 상품권이니까, 그걸 식비 계산 때 써야 해요, 아시겠죠?”

'그럼 빨라도 2시 반 이후에나 밥을 먹게 되겠군.'

스카이워크는 TV에 자주 나왔던 곳이었습니다. 한반도 모양의 지형을 내려다보는 전망대. 풍경은 좋았죠..


하지만 홍보용 사진으론 두세 장 찍으면 끝날 곳입니다. 유리 바닥에 흠집이 날까 봐 운동화를 보자기로 감싸야 들여보냈습니다. 삼각대를 펼칠 수도 없었습니다.

이곳에 다녀간다는 뜻의? 인증사진은 안내인이 찍어주는데, 풍경 사진보다 그 사진이 더 잘 나오면 '주객전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발밑에 유리판, 그밑에 한반도 지형이 보이시나요?

사진을 많이 찍어야 한다는 저의 야심은 또 한 번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정선 5일 장엔 2시 반에 닿았습니다. 2일과 7일에 서는 장인데, 시골장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정선은 군청소재지인데, 큰 도시에서도 보기 드문 크기의 현대식 시장이었습니다. 

버스를 함께 타고 온 사람들은 게눈 숨듯 바삐 흩어졌습니다. 왜냐구요? 배고팠고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리고 한 시간쯤 후에 다시 버스로 모여 평창 ‘평화의 길’로 향했습니다. 이번 행선지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평화’는 오늘 사진 주제와도 통하는 단어였죠.

하천을 따라 걷는 데크길 어딘가에 ‘평화’가 보이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조형물이나 풍경 어딘가에 평화가 스며있다면 그것만 찍어도 본전이라고 본 것이죠.

그런데 없었습니다. 투덜투덜 걸어도 땀은 똑같이 흘렀습니다.

밤 9시 반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습니다. 아내가 묻기도 전에, 이번 여행의 흠을 잡고 있었습니다.

지지리골에서는 사진을 찍을 만한 곳이 없었고, 스카이워크에서는 삼각대를 펼칠 수 없었고, 평화의 길은 매우 싱거운 길이었다고 말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제가 건져 온 것은 풍경도, 사진도 아니었습니다.

'모자챙에서 뚝뚝 떨어지던 땀방울만 기억에 남았습니다.

아내는 배낭을 내려놓는 내 얼빠진 표정을 보더니 픽 웃었어요.

“사진 풍년이라더니 땀 풍년만 담아 오셨네?”

카메라 앨범을 열어보니 진짜 셔터를 누를 곳은 손에 꼽을 정도가 맞았습니다. 홍보용 사진은커녕, 내가 여기서 뭘 했나 싶게 허탈한 풍경이 오히려 나를 보고 피식 댔습니다.

생각해 보니 ‘지지리골’은 지지리도 찍을 게 없었고, ‘스카이워크’는 덧신까지 신고 삼각대 눈치만 보다가 끝났으며, ‘평화의 길’엔 평화를 깨뜨린 무더위뿐.

사서 고생 실컷 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아내가 내어주는 수박 한 조각을 베어 무니, 그제야 오늘 여행의 진짜 '본전'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됐습니다.

찍어 온 사진은 없어도, 아내에게 늘어놓을 하소연은 자고 나도 거기 그대로 있지 않겠습니까? 수다거리는 남았으니 밑지기만 한 장사는 아니라고 우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