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가 맷돌 손잡이라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무릎을 쳤다.
"아, 그래서 어처구니없다는 말이 나왔구나."

듣자마자 고개가 끄덕여졌다.
맷돌에 손잡이가 없다면 곡식을 갈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얼마 뒤에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에는 궁궐 지붕 위에 올려놓는 흙으로 만든 인형, 즉 토우(土偶)가 어처구니라는 설명이었다.
공사가 끝날 무렵 마지막으로 올려야 할 토우를 빠뜨리면 큰일이니 "어처구니없다"라는 말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 또한 그럴듯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두 이야기를 사실로 믿고 살았다.
아마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이야기라면 더욱 쉽게 믿는다.
궁궐 지붕 위에서 마지막 토우를 찾느라 허둥대는 장인의 모습.
맷돌 앞에서 손잡이를 찾으며 난감해하는 농부의 모습.
둘 다 금세 상상이 된다.
그러니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그런데 얼마 전 어원에 관한 글을 읽다가 조금 놀랐다.
국어학자들은 이 두 설명을 모두 조심스럽게 바라본다는 것이었다.
그럴듯한 이야기와 실제 어원은 다르다는 설명도 곁들여져 있었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어원을 밝히려면 기록이 있어야 한다
옛 문헌 속에 실제 사용 사례가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처구니를 궁궐 토우라고 부른 기록도 분명하지 않고, 맷돌 손잡이라는 설명 역시 결정적인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 옛 문헌 속의 어처구니는 조금 다른 뜻으로 쓰였다고 한다.
상상을 뛰어넘는 것.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것.
놀랍고 기이한 것.
본래는 그런 의미에 가까웠다는 설명이었다.
처음에는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히려 그쪽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우리가 "어처구니없다"라고 말하는 순간을 떠올려 보자.
맷돌 손잡이가 없어졌을 때보다 훨씬 큰 일들 앞에서 그 말을 하지 않는가.
뉴스를 보다가도 그렇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다가도 그렇다.
때로는 내 행동을 돌아보면서도 그렇다.
"아니, 저게 가능하다고?"
"도대체 왜 저렇게 했을까?"
"정말 이해가 안 되네."
그럴 때 우리는 말한다.
"어처구니없네."
너무 뜻밖이라서, 너무 황당해서,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아서다.
생각해 보면 살아오면서 그런 일들을 꽤 많이 만났다.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도 있었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행운도 있었다.
계획에 없던 만남이 평생 인연이 되기도 했고, 우연히 시작한 일이 오랫동안 즐거움이 되기도 했다.
반대로 자신 있던 일이 뜻밖의 실패로 끝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놀랐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대부분은 내 예상 밖에서 찾아왔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인생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어처구니없음은 황당함만을 뜻하지 않는다.
기쁜 일도 어처구니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으니까.
슬픈 일도 어처구니없었다. 그 역시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결국 사람은 자기 생각의 범위 안에서 세상을 이해하려 하지만, 세상은 늘 그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그래서 놀라고, 당황하고, 그러다 웃기도 한다.
어처구니가 토우인지 맷돌 손잡이인지는 여전히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살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은 끊임없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칠십여 년을 살아보니 더욱 그렇다.
젊을 때는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진다.
그러니 앞으로도 내 생각의 범위를 벗어나는 황당한 일을 만나면, 괜히 어원을 따지거나 시비를 가리기보다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려 한다.
어쩌면 삶이란, 그 어처구니없는 순간들을 통과하며 조금씩 채워지는 커다란 여백 같은 것일지도 모르니까.
"너에게 난~ ~ " 어른스럽던 김유하 어린이가 얼마나 컸을지...
내가 유하만큼 어렸을 때, 내 꿈을 키워준 동네 유일한 곳 '당동리 북중 운동장'.
임진강 바람에 꼬리연은, 나를 실끝에 매달고 높이 높이 올랐었지.
'만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세월이 흘러도 서른을 넘지 못하는 내 동생 (0) | 2026.07.13 |
|---|---|
| 할머니, 워디갔다오세유? (0) | 2026.07.07 |
| 칠순 산객의 거짓말 (5) | 2026.06.16 |
| 서울대공원 숲속의 저수지에서, 번잡을 잠시 내려놓다 (2) | 2026.06.02 |
| 대청봉 무박산행, 5분 차이로 버스를 놓치다 (3) | 2026.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