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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필

낮달로 뜨던 남자

by 월화 희준 2026. 5. 4.

 

한낮에 헬스클럽에 가기,

내겐 익숙한 일과가 되었어요.

 

오늘은 아줌마들 열댓에 남자는 나 혼자뿐이데요.


요즘 저의 근무방식은 하루 가고 이틀 놀기입니다.

그런 데가 어디 있냐고요? 있었죠.

 

김포국제공항이 영종도로 이사 갈 무렵,

2000년 여름으로 기억합니다.

그때만 해도 공항은 심야에 문을 닫았죠.
입출국하는 비행기가 없었으니까요.

 

그러다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부터인가

심야에 도착하는 비행기가 하나 둘 생기더니,

나중엔 24시간 문 여는 공항이 됐습니다.

 

그때부터 관계 직원들은 24시간 상주했죠.

그땐 근무조를 이렇게 외웠습니다.


'주야비보주야비비'

주간 야간 비번 보근 주간 야간 비번 비번.


새벽에 출근해서 낮에 퇴근하는 사람,

낮에 출근해서 심야에 퇴근하는 사람,

비번인 사람, 보근하는 사람.

 

뭐 이러다가 복잡하고 외우기 어렵다며,

24시간 근무 48시간 휴무로 바뀐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 근무하고 이틀 쉬는 방식.

많이 노는 것 같지만 8시간 근무에 16시간 휴식하는,

일반 회사원들과 같은 시스템이죠.


다만 하루 결근하면 5일간 집에 있었어요.

 

주변에서 많이 노는 것 같아 보인다는 지적에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하루 회사 가고 이틀 놀던 남자였습니다.


낮에 같이 놀 남자 친구는 귀하지만 아줌마들 틈은 많았죠.
테니스장, 수영장, 볼링장 어딜 가나 아줌마들 천지니까요.

 

어쨌든 꽃밭에서 오늘은 예쁜 여자가 몇인가 두리번거리며,

운동화 뒤축을 당기는데,

한쪽 공기주머니가 터져 있는 거예요.


NIKE air인데 오래 신었지만 비싼 것이니

조금 더 신기로 했죠.
그보다는 낯선 여자도 있었고

예쁜 아줌마도 있는 게 마음을 바쁘게 했어요.

 

이왕이면 다홍치마,

모르는 사이지만 예쁜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좋잖아요.
오늘의 호프 예쁜이 아줌마도 나이키를 신고 있었어요.

그것이 이상하게 눈에 번쩍 띄었어요.

 

사실 실내 연습장에서까지

좋은 운동화를 신을 필요는 없거든요.

 

그것은 수준 높은 차림이거나 낭비죠.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예쁜 사람이 신으면 패션,

못 생긴 사람이 신으면 낭비.
나 이러다가 몇 대 맞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오늘 난 패션에 끌렸어요.

쩝, 동류의식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러나 'NIKE'를 나이키라고 안 읽고 "니케"라고 읽던

아줌마가 생각나서 유심히 봤어요.


그런 아줌마는 아닌 것 같아서 나이쓰!.

실내 공기도 훨씬 쾌적하게 느껴졌고요.

 

*러닝 머신은 아줌마들 사이에 껴서*

 

이 아줌마 옆에 가서 허리 좀 꺾고

저 아줌마 옆에 가서 아령도 들고,

러닝머신 가운데 자리가 나기를 기다렸어요.


가장자리보다 복판의 자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양쪽에 아줌마를 두고 뛸 수 있기 때문이죠.
마침 예쁜 아줌마 옆에 자리가 났어요.

잽싸게 올라서 뛰기 시작했죠.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샐쭉거리며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러나 사방 벽이 거울로 되어 있어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보지 않으려 해도

착착 입력되었어요.


마흔쯤? 눈이 예쁜 여자였어요.

그래서 나는 땀이 흐르기 전에 자주 닦았죠.

앞이마가 약간 대머리라서 땀을 닦지 않으면

볼상 사납기 때문이지요.

 

체력을 뽐내기 위해서 속도계를 높였어요.
그녀는 6.5, 나는 8.5, 오른쪽 아줌마는 6.0.

 

낯선 여자의 거친 숨소리, 이를 어디 가서 듣겠습니까?


그녀보다 오래 달리려고 열심히 뛰었으니

얼마나 땀을 흘렸겠어요.

 

그녀가 뜀틀에서 내려간 뒤에도 나는 계속 뛰었습니다.

다른 운동을 하면서도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던 여자.


나에게 볼 일이 있는 듯 보여서 더 유려한 폼으로 뛰었죠.
헬스클럽이 좋은 점은 노리는 여자의 모습이

사방팔방 거울에 있다는 것.

 

젖은 옷이 섹시하게 보일 때가 많으므로,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틀어보는데,

그녀가 머뭇머뭇 내 뒤에 와서 있는 게 아니겠어요.


무슨 말인지 하려는 눈치가 역력하였으므로,

나는 호흡으로 똥배를 당겨 뱃살을 없앴습니다.


젖은 앞머리를 젊을 때

장발 넘기듯 고갯짓으로 넘겼어요.

 

사실 탁월하게 달리던 폼을 생각하면

많지 않은 머리칼이지만 손대지 않고

넘기는 게 격에 맞았거든요.


그녀는 "저 -"하고 더듬기 시작했어요.

 

당연히 더듬겠죠. 내가 맘에 들었다면.
젊은 시절 내 별명은 타잔이었어요.

사우나를 가면 

몸매는 바꾸자는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그러나 그녀는 제 인상까지도

맘에 드는 듯 자주 쳐다보았으니,

당연히 떨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거울 속에 제 인상을 최대한

순진하게 만들며 기계를 껐죠.

그녀의 초록 매니큐어는 입구 쪽

완력기계를 가리켰어요.


'옳거니, 기계 사용법을 물으며 작업 들어오는군.'


세상에서 가장 순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샹송 같은 목소리가 들렸어요.

 

"저 죄송하지만 댁의 운동화에서 나는

찌그덕 소리가 자꾸 거슬려요."


아이고 이게 뭔 소리여?

사실 그 소리는 나도 거슬리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게 무슨 봉변입니까?

 

그녀의 옥구슬 같은 목소리는

운동화를 만지고 있는 내 뒤통수를 지나갔어요.


"저기 회원들이 버리고 간 운동화 중에,

쓸 만한 것이 많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