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만필

안양천 벚꽃길 마라톤, 나는 왜 더 뛰게 되었나

by 월화 희준 2026. 4. 14.


그저께, 나는 마라톤 코스를 미리 뛰어봤다.
문제는 멈추지 못한 발이었다.

 

안양천 벚꽃 마라톤 대회 이틀 전.
나는 실제 코스를 먼저 뛰어보기로 했다.

영롱이 억새 1 구장.
출발 지점이다.

아내에게 운전을 시켰다. 

혹시 5km라도 같이 뛰고 싶어서. 


대회당일 차를 몰고 오는 일은 절대 금물이다.
그런데 차가 멈춘 곳이 조금 이상했다.

“여기야?”

아내는 네비대로 왔으니까 태연했다.
나는 잠깐 망설였다.

그렇게 시작이 조금 어긋난 듯했지만

길 건너나 이쪽 길이나 벚꽃이 끝내주는 길

 

그날의 숨과 바람은, 이 짧은 영상(2분)에 남아 있다.

 

정확히 말하면 만개일은 며칠 전이고

지금은 끝물이었다.

개천 오른쪽 길로 붙었다.
벚꽃이 줄지어 있었다.

바람이 불면
꽃잎이 조금씩 흘렀다.

길은 좋았다.
아주 좋았다.

왼쪽 개천 건너도 좋고
오른쪽도 좋았다.

그래서였을까.
방향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냥 뛰었다. 목표는 단순하다.
5킬로 반환점.
그리고 다시 돌아오기.
10킬로.

전자시계는 켜지 않았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합수부가 반환점이니까.

발이 가볍다.
호흡도 괜찮다.
벚꽃이 이어진다.

좋은 길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뛰다 보니 철산교를 지나도
반환점은 보이지 않았다.

한강과 안양천이 만나는 곳.
합수부.

분명히 눈에 확 뜨일 지점인데
감감무소식이다.

잠깐 멈칫, 이상하다.

그제야 생각이 든다.
혹시… 방향이 바뀐 건가.

조금 더 가본다.
그래도 아니다.

결국 돌아선다.
그때 전자시계를 켠다.

이제는 확인해야 한다.
원점으로 돌아가면 몇 킬로를 왔는지
답이 나오지 않나.

다리가 조금 무거워진다.
아까보다 말이 줄었다.

그래도 벚꽃은 그대로다.
끝물이지만 흐드러진다.

길은 여전히 좋다.
그게 더 묘하다.

잘못 뛰고 있는데
기분은 나쁘지 않다.

다만
몸이 먼저 안다.

이건 조금 길다.
원점이 보인다.

해마루 축구장의 주차장이다.
시계를 본다. 6.1킬로.

아, 그렇구나.
왕복이면, 12.2킬로다.

10킬로를 뛰러 나왔다가
2킬로를 더 얻었다.

얻은 건지
잃은 건지, 잠깐 헷갈린다.

숨이 고르지 않다.
다리에 힘이 빠진다.
아내가 다가온다.

표정을 보더니
금방 안다.

“많이 힘들었죠?”

나는 웃는다.
아내가 말한다.

“탁주 한 사발 사드릴게.”

잠깐 귀를 의심한다.
이 사람이, 술을 권한다고?

결혼하고 처음 듣는 말이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됐어.”

이상하게 그 말이 더 좋다.

집으로 돌아와서.
신발을 벗고, 베란다 쪽을 본다.

목련이 핀 상태가 어제와 또 다르다.
어제는 아니었는데
오늘은 다르다.

화들짝. 그 말이 맞다.
갑자기 피었다.

오늘은 조금 길게 뛰었다.
길도 조금 틀렸다.

그래도 괜찮다.
벚꽃도 있었고, 사람도 있었고
목련도 있다.

그리고
처음 듣은 말 한마디.

"탁주 한 사발 사드릴게."

아내의 마음이 담긴
그 말의 여운은 무척 길었다. 

 

<이전글> 개떡같은 세상에서 만난, 찰떡 아이

  <다음글>우리부부의 '죄와 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