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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진/여행수필

하동 동정호, 지방정원으로 다시 태어나다

by 월화 희준 2026. 10. 13.

5년 만에 다시 찾은 하동 악양.
기억 속 최참판댁은 세월의 옷을 새로 입었고,
발길이 닿은 인근 동정호 역시
전과 다른 깊고 맑은 빛을 띠고 있었다.

알고 보니 동정호는 올해
경남 제3호 지방정원으로 지정되었다 한다.
오래된 생태공원이 결 고운 정성이 더해져
어엿하고 정갈한 새 이름표를 달았다.

이름이 국가정원이든 지방정원이든
그 규모나 화려함의 크기는 다를지라도,
자연을 고이 가꾸어 사람을 품어안으려는
그 다정한 마음이야 어찌 다르겠나.

동정호 지방정원


호수와 습지, 바람이 머물다 가는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가만히 휴대전화 렌즈에 풍경을 담아본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가꾸어갈 동정호의 사계가
벌써부터 안부처럼 기다려진다.

최참판댁을 천천히 거닐다 이른 동정호.(차로 5분 거리)
고즈넉한 옛 기와집 사이로 시간을 거슬러 올랐다면,
이곳은 물결 따라 걸음을 느리게 고쳐 걷는 자리였다.


동정호는 자연의 결을 있는 그대로 간직한 생태공원이다.
눈을 현란하게 사로잡는 인공의 볼거리 대신,
물과 나무, 억새와 풀꽃, 그리고 낮은 바람이 어우러져
마음을 한없이 평온하게 풀어놓아 준다.

호숫가를 따라 조성된 데크길을 천천히 거닐다 보니
문득 서두를 까닭이 전혀 없음을 깨닫는다.
어디를 꼭 가야 한다는 목적도, 욕심도 내려놓은 채
발길이 머무는 곳에서 멈추고
눈길이 닿는 한 조각 풍경을 사진에 남겨둔다.


길을 나서다 보면 천하명승보다
가슴 깊은 곳에 오래도록 남는 장소가 있다.
거창한 감탄이나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저 걷는 발걸음이 편안하고
헝클어진 마음이 사르르 가라앉는 곳 말이다.

내게는 동정호가 바로 그런 다정한 품이었다.


생태공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곳의 자연은 제 모습을 드러내는 데 결코 조급해하지 않는다.
물가의 조용한 풀 한 포기, 바람 따라 흔들리는 나뭇가지도
저마다의 고유한 자리에서 묵묵히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사람은 모름지기 어여쁜 풍경을 마주하면
그 순간을 영원히 잡아두려 손부터 바빠지기 마련이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손에 쥔 휴대전화로 이리저리 구도를 잡으며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댔다.


어느새 열 장 넘게 쌓인 사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문득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정작 내 두 눈으로, 그리고 가슴으로는
이 풍경을 얼마나 깊게 바라보고 느끼고 있었던가 하고 말이다.


최참판댁에서 옛사람들의 짙은 삶의 자취를 보았다면,
동정호에서는 자연이 들려주는 느리고 조용한 시간을 만났다.
서로 가까운 거리에 누워 있으면서도
두 곳은 이렇듯 서로 다른 아늑한 이야기를 건네어 준다.

생각해보면 여행이란
굳이 아득히 먼 곳으로 떠나는 일만은 아닌 듯하다.
매일 걷던 익숙한 궤적에서 살짝 벗어나
잠시 멈춰 서는 것만으로도,
우리네 삶과 마음은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으니 말이다.


하동 악양에서 보내온 하루가 딱 그러했다.
돌아오는 길,
노을빛 물든 동정호의 잔잔한 호수 그림자 하나가
오랫동안 가슴 한켠에 따스한 온기로 남아 있었다.

 

오늘은 '지방정원', 다음 행선지는 '국가정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