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파도와 마천루 사이에서, 다시 만난 해운대
한반도 해수욕장의 대장 해운대
여름이면 방송과 뉴스 화면을 빼곡하게 채우는 알록달록한 파라솔의 물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늘에서 내려다본 해운대의 뜨거운 피서철 풍경을 한 번쯤 마주쳤을 것이다.

2009년 천만 관객의 가슴에 깊은 각인을 남겼던 영화 <해운대>처럼, 이곳은 단순한 피서지를 넘어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공유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여름 대명사다.
근 10년 만에 다시 찾은 해운대의 첫인상은 생경하면서도 압도적이었다.
백사장 북쪽으로 아득하게 솟아오른 초고층 마천루들이 하늘의 선을 완전히 새로 그려놓은 까닭이다.

과거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완만한 해안선과 탁 트인 바다 풍경 위로 도심의 늘씬한 빌딩 숲이 겹쳐지며, 수직과 수평이 오묘하게 교차하는 웅장한 해양 도시의 면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승용차로 해운대를 찾는 손님들에게 동백섬 주차장은 바다로 들어서는 유일하고 다정한 관문이다.

차를 대고 동백섬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푸른 숲의 울창함과 기암괴석에 부딪히는 하얀 파도를 즐기는 일은, 해수욕장 구경에 더해지는 기분 좋은 덤이자 필수 코스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영주차장이라 주차 요금 부담도 적고, 별도의 입장료 없이 누구에게나 시원하고 넓은 품을 내어주는 바다의 다정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약 1.5km로 시원하게 길게 늘어선 백사장은 대한민국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당당한 규모를 자랑하는데,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바닷물에 발을 담그기도 전에 가슴속 막혔던 답답함이 먼저 뻥 뚫려나간다.
‘해운대’라는 이름 뒤에는 신라 시대의 석학 최치원 선생에 얽힌 소소한 이야기 하나가 숨어 있다.
벼슬을 버리고 가야산으로 향하던 길, 그는 이곳의 빼어난 바다 풍경에 온 마음을 빼앗겨 발걸음을 멈추었다.
해운대와 동백섬
홀린 듯 동백섬 바위에 자신의 호인 ‘해운(海雲)’을 깊게 새겨 넣었는데, 아마 당시에도 요즘 사람들의 표현처럼 '이 장관은 꼭 저장해 두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가 남긴 자그마한 감탄과 문장의 운치가 천년이라는 긴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이 거대한 바다의 이름으로 청청하게 불리고 있으니 참으로 흥미롭고 정겨운 일이다.
게다가 옛날의 해운대는 따뜻한 온천수가 보글보글 솟아나 동백꽃과 온천, 그리고 푸른 바다가 한데 어우러진 천혜의 휴양지였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이 땅의 매력은 보통이 아니었나 보다.
들이치고 쓸려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백사장에 가만히 서서, 억겁의 세월을 담아낸 바다와 인간의 손으로 올려 세운 현대의 마천루를 번갈아 바라본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해변의 풍경은 비약적으로 달라졌지만, 이 바다가 찾아오는 이들에게 안겨주는 아련한 설렘과 안식만큼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시원한 해풍에 실려 오는 짭조름한 바다냄새 속에서, 해운대는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추억을 차곡차곡 받아안으며 변함없이 푸르고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