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필/고교얄개

[고교얄개 ⑱] 나무젓가락과 뺑코

월화 희준 2026. 10. 5. 19:00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짜장면

 

먹고 싶죠? 짜장면

군대에 있을 때 제일 먹고 싶었던 것. 첫 휴가 나가면 서울에 닿자마자, 열 일 제치고 먹어야지 했던 것.
 
중국집 하면 으레 떠오르는 게 짜장면이다.
표준말이 ‘자장면’이라지만 어려서부터 익어온 정감 때문에, 나는 ‘짜장면’이라고 불러야 제맛이 났었다.

표준말을 모른 척할 수 없어 불편했는데, 최근에 짜장면도 표준말이 됐단다. 표준말이 되기 전에도 자장면이란 말은 써본 적이 없다.

동교 진학한 고등학교 입학식 날, 우리의 주문은 우동 하나에 짜장면 셋.

"우짜짜에 짜곱 하나"

그 이전에도 중국집에 갔었겠지만 그때가 첫 기억 마냥 남아있는 것은, 강렬한 추억 한 컷 때문이다. 흑백사진처럼 바랜 추억 가운데 강렬히 남아 있는 장면은 나무젓가락 비비기다.

그 시절 젓가락의 품질이 좋지 않아서 제품 모서리에 나무 보푸라기가 몇씩 있었고, 그냥 먹다간 입술이 찔리기도 했었다. 그런데 곱빼기를 시킨 뺑코는 나무젓가락을 받자마자, 그것을 둘로 떼어내더니 손바닥 사이에 모으고 그것들끼리 마구 비볐다. 

우리가 하나씩 뜯고 있는 보푸라기를 한꺼번에 처리한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는 익숙하게 면을 비비고 있었다.

우리가 어쩌다 먹는 짜장면을 그 친구는 많이 먹어본 것처럼 여겨졌고, 집도 부유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뽀얀 얼굴에 오뚝한 콧날이 그날따라 더 인상적이었고, 그 모습은 여태껏 잊히지 않는다.

지금도 산이나 바다에서 컵라면을 먹을 때면, 아니 어디서건 나무젓가락을 보면, 귀티 나던 그 뺑코 얼굴이 떠오른다. 그렇게 살아나는 기억에 나 스스로도 놀라곤 했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한 장면이 이렇게 오래도록 마음 안에 있을 줄이야.
 

면 비비기와 젓가락 비비기

사실 그때 나무 보푸라기를 없애는 방법으로 젓가락 비비기는 기발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 방법을 몰라도 국수를 조금 늦게 먹을 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기 때문에 하찮은 재주에 불과했다. 그저 처음 보는 것이어서 인상적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옆에 앉은 멍식(실제 이름은 명식)이가 자기도 많이 해본 양 따라 했다. 누가 봐도 멍식이의 비비기는 서툴렀지만 우리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건 우리의 불문율이었지만 그의 얼굴은 금방 빨개졌었다.
 

 
젓가락 비비기, 그거 하나에 뺑코는 나보다 뭐든지 잘할 것 같았다.
 
나는 기가 죽어있었고 첫인상은 참으로 오래갔다. 하지만 그 나무젓가락 비비기를 못생긴 친구가 했어도 이토록 오래 남아 있을까.

귀티 나는 뽀얀 얼굴로 젓가락을 비비는 뺑코의 하얀 손을 보고, 아마 거무튀튀한 내 손을 보았을 것이다.

이 땅에 테트론 옷감의 교복이 생겨났을 때도, 옥양목의 검정 교복은 1년이면 허옇게 빛이 바랬었다. 검은 교복 속에도 엄연히 존재했던 빈부의 격차, 이젠 잊어도 좋은 흑백사진 속의 기억 몇 장.

그것에 하찮은 나무젓가락 하나, 언제나 기대어 있다.


 
**다음 얄개전은 '명식'이란 좋은 이름이 '빙신'으로 바뀐 사연입니다**
 
    "잊히지 않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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