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필

바다 위를 걸어서 한 바퀴

월화 희준 2026. 9. 29. 19:00

해운대에서 동해 방향, 간절곶 쪽으로 조금 달리면 청사포가 나온다.


이름만 들으면 오래전부터 있던 포구 같지만, 그곳은 바다를 향해 거대하고 푸른 철제 구조물이 하나 나와 있다.

청사포 다릿돌전망대다.


처음 보면 조금 엉뚱하다.

바다 위로 길게 뻗어나간 것이 아니라, 어느새 바다를 한 바퀴 휘돌아 나오는 모양이다. 파란 철골 사이로 바다가 보이고, 끝으로 갈수록 육지는 멀어진다.


발아래에는 유리도 있다.

예전에는 이곳을 걸으려면 구두나 등산화 위에 덧신을 신어야 했다고 한다. 유리 바닥을 깨끗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덧신을 신을 필요가 없었다.

그냥 평소의 신발 차림으로 들어가 바다를 향해 걷고, 한 바퀴 돌아 다시 육지로 나온다.

세상이 참 많이 편해졌다.

내 신발 밑창이 유리를 더럽힐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덧신을 벗어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일도 없다.

그런데 이 전망대에는 조금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처음 문을 연 것은 2017년이다. 당시에는 바다 쪽으로 72.5m를 뻗은 일자형 전망대였다. 높이는 바다에서 약 20m.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찔했을 텐데, 2024년에 크게 손을 봤다.

길이가 무려 191m로 늘어났고, 지금의 U자형 모양이 되었다. 바다 위에 길 하나를 더 놓은 셈이다.

이름에도 이야기가 있다.


전망대 앞바다에는 해상등대까지 다섯 개의 암초가 줄지어 있다. 사람들이 그것을 ‘다릿돌’이라 불렀다. 돌다리처럼 나란히 놓여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전망대 이름을 정할 때 전국에서 724건의 이름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 가운데 결국 선택된 이름이 ‘청사포 다릿돌전망대’였다. 멋을 부린 이름보다 그곳에 있는 돌과 마을의 이야기를 담은 이름을 택한 셈이다.

나는 이런 이름이 좋다. 또 한가지 좋은 건 입장료와 주차료가 없다는 것.
그리고 사람이 만든 시설이지만, 이름만큼은 원래 그곳에 있던 자연에게 돌려주는 것 같아서다.



유리 바닥 위에 올라서니 발밑으로 파도가 보인다.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으려 했는데 자꾸 보게 된다.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하다.

무섭다고 하면서도 또 내려다본다.

젊을 때 같으면 유리 위에서 괜히 발을 굴러보기도 했겠지만, 이제는 얌전히 걷는다.

바람이 불면 철제 난간이 가볍게 떨리고, 바다에서는 파도 소리가 올라온다.

멀리 등대가 서 있고, 뒤돌아보면 청사포 마을이 보인다.

바다 한가운데 나와서야 비로소 육지가 보이는 것이다.

전망대는 바다를 보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나는 오히려 육지를 돌아보게 됐다.


사람도 그런 것 같다.

젊을 때는 자꾸 앞으로만 가려고 한다.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높이.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가끔은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청사포 다릿돌전망대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육지에 발을 디뎠다.

바다 위에서는 그렇게 길게 느껴지던 길이 육지에 올라오니 금방이었다.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푸른 철골도 찍고, 유리 아래 바다도 찍고, 멀리 보이는 등대도 찍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장은 뒤돌아서 찍었다.


내가 걸어온 길이 바다 위에 푸른 반달처럼 놓여 있었다.

바다를 보러 갔다가
내가 걸어온 길을 한 번 더 바라보고 돌아왔다.

이번 청사포에서 건진 사진은 어쩌면 그 한 장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