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진/산행수필

남산에서 건넨 이야기

월화 희준 2026. 9. 22. 19:00

사당역에서 4호선을 타고 가며 잠시 고민에 빠집니다. 남대문까지 들러볼까 싶었지만, 도보로 이동하기엔 좀 먼 길이라 서울역을 지나쳐 회현역에서 내렸습니다. 남대문은 다음 기회로 미뤄두고 곧장 남산공원 입구로 향합니다. 커다란 공원 간판이 반갑게 맞아주고, 정돈된 오르막길을 따라 오늘의 산행을 시작합니다.


산입 초입부터 오늘의 목적지인 서울 타워를 보면서 오릅니다.


이 언덕을 오르면 왼쪽에 김유신 장군이 기마 동상에 앉아 눈을 부릅뜨고 있습니다.

 

5분쯤 더 걸어 올라가니 옛 어린이회관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지금은 관공서 교육관으로 쓰이고 있지만, 빛바랜 건물 모퉁이마다 아련한 지난날의 기억이 스쳐갑니다.

 

성곽길을 따라 조용히 걸음을 옮깁니다. 나지막한 오르막 끝에서 늠름하게 서 있는 김유신 장군의 기마 동상을 지나치니, 이내 시원하게 트인 백범광장이 펼쳐집니다


빌딩이 빽빽한 도심 한가운데 이처럼 넓고 평온한 품이 숨어 있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동상 앞에 서서 잠시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바라봅니다.


버들강아지들이 모여 있어 포커스 아웃 촬영기법으로 한 컷 찍어둡니다.


안중근 기념관과 안중근광장에 도착했습니다.

 그 곁에 위치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커다란 바위에 힘차게 새겨진 필체 앞에 서니, 글자 하나하나에 담긴 굳은 기상과 절개가 마음 한구석에 묵직한 울림을 남깁니다.

'견리사의 견위수명' 글자가 보이죠? 맨 밑 의사의 손가락이 잘린 모습이 곳곳에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로운 것을 보았을 때는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운 것을 보았을 때는 목숨을 바치라는 뜻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모습이 흐릿하게 나와 죄송합니다. 당시 빛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드디어 서울타워 근처에 오르는 느낌
서울타워 오르막 계단
ㄷㅜㅜ


팔각정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서 두 곳의 전망대를 만납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바라본 서울 시내는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줍니다.

 머리 위로 느릿하게 지나가는 케이블카를 지나, 옛 이름 '목멱산'의 정취가 남아있는 봉수대 앞에 섭니다.

목멱산 봉수대

이곳은 전국 각지에서 불꽃으로 전해져 온 소식들이 마침내 모이던 조선의 가장 높다란 중앙 통신소였습니다. 흔히 봉화라 하면 전쟁의 긴박함을 떠올리기 쉽지만, 500년 세월 동안 이곳에 가장 많이 올랐던 것은 '아무 일 없다'는 신호인 단 하나의 횃불이었습니다. 매일 밤 남산 꼭대기에 홀로 켜지던 그 불빛 하나를 확인하고서야 임금도, 한양의 백성도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잠자리에 들었을 것입니다.

비나 안개에 불길이 가려질 때면 군사들이 밤길을 직접 달려 소식을 전했다던 이야기를 생각하니, 돌 하나하나에 맺힌 세월의 무게가 새삼 다르게 다가옵니다. 오늘날의 서울 역시 저마다의 시름을 품고 바쁘게 움직이지만, 이 고즈넉한 봉수대 터에 서서 빌딩 숲을 내려다보며 오늘 하루만큼은 별 탈 없이 평안하기를 가만히 기원해 봅니다.







마침내 남산의 정점인 팔각정에 다다릅니다. 어린시절부터 봐온 팔각정의 자태와 그 뒤로 단단히 서 있는 서울타워가 조화롭게 어우러집니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 타워 밑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전경은 분주한 세상의 흐름을 한 걸음 떨어져 보게 만듭니다. 높다란 곳에서 스치는 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히는 순간, 마음속까지 맑아지는 기분이 듭니다.

가장 확실한 서울의 랜드마크도 하단엔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서울타워에서 내려다본 서울 시내 전경




하산은 동국대학교 방향으로 잡았습니다. 올라올 때와는 전혀 다른 정취를 주는 한적한 숲길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오를 때의 수고로움은 사라지고, 마음엔 남산이 건넨 푸른 기운과 봉수대의 온기가 가득 채워집니다. 퇴계로를 거쳐 다시 회현역으로 돌아오며 오늘 하루의 산행을 조용히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