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옷고름에 담긴 추억
수필가 초년병 시절, 제 이야기엔 아내가 많았습니다. 25년 전이면 4 반세기 전쯤이죠? 그때까지만 해도 젊었던 아내는 제법 예뻤습니다. '제눈에 안경' 역할인 줄은 알지만... 지금도 명절 때 한복 차림의 그녀를 보면, 옛 시절 나누었던 설렘과 고백들이 마음을 흔들곤 합니다.
닷새간의 냉전을 끝낸 자줏빛 저고리
그날 아침은 눈부셨습니다.
햇살은 팔랑대는 아내의 옷고름에 자줏빛으로 부서졌습니다. 미용실 가는 돈이 아깝다며 기른 머리를 쪽쪄 올리고, 자주색 저고리에 연보라 치마의 아내가 참 예뻐 보였습니다.
결혼 20년 동안 이런 외출은 손가락으로 셀만큼 드물었죠. 한복을 입은 아내는 또 다른 새로움으로 다가왔고, 오랜 세월 무던히 순종해 준 아내에게 난 몇 점짜리 남편일까 스스로 묻기도 했습니다.
돌아보면 20년(이 글은 25년 전 글이니 45년 전) 아내가 억척 여인으로 변한 세월이기도 했습니다. 맞벌이와 아이들 뒷바라지에, 8번의 이사를 다니면서도 이재에 밝지 못한 남편을 대신해 집을 구하고, 살림을 일궈낸 것은 온전히 아내의 몫이었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변변한 선물 하나 해주지 못했고, 길거리의 과일이나 생선 한 토막 들고 오지 못했던 알량한 남편이었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아이들이 소풍길에 사 온 소소한 머리핀 하나에 더 행복해하였습니다. 그런 아내와 저는 그날, 닷새 동안 이어지던 긴 냉전을 끝낸 참이었습니다.
결혼 20주년 기념여행을 의논하다가 나온 아내의 '이혼'이라는 단어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상처가 되어버린 그 단어를 다시는 꺼내지 못하도록 완벽히 이기고 싶었지만, 냉전이 길어질수록 속상했을 아내가 애처로웠습니다. 원인은 저의 음주벽과 늦은 귀가였으니 승패를 따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지요.
사과하고 화해하려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던 차에, 어제 아침 아내가 먼저 말을 건네왔습니다. 친구들 부부동반 모임에 갈 수 있냐며. 무뚝뚝하게 장소를 물었지만 내심 화해의 기회라 여겼습니다.
아들의 목소리 하나에 꼬여버린 화해 작전
그러나 모처럼 선물을 사려고 들렀던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 반시간이나 갇히는 바람에, 약속 시간에 늦고 말았습니다. 핸드폰 불통 지역에서 헤매는 동안, 약속 장소에서 토라진 아내는 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집에 있던 아들아이가 감기 때문에 목소리를 깔고 전화를 받자, 아내는 남편이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보는 줄 오해하고, 뾰로통하게 나가버린 것입니다. 아들과 남편의 목소리를 혼동해 일어난 해프닝.
바람을 맞고 혼자 돌아오는 길, 날로 의젓해지는 아들과 새침하던 아내를 처음 만나던 추억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남편에게 바람맞은 아내는 제 키만 한 아들 뒤에 숨어 빙긋 웃고 있었습니다. 저는 신발장에 준비해 둔 벽보를 꺼냈습니다. 낱장에 한 글자씩 쓴 종이를 끝에서부터 거꾸로 붙여나갔고, 아들아이는 그것을 따라 읽었습니다.
「음,걸,첫,의,국,애,은,랑,사,내,아」
우리의 긴 냉전은 그렇게 웃음 속에서 끝이 났습니다.
손수건 한 장으로 눈을 가리던 그 시절의 마음으로
햇살 아래 나란히 걸으며 팔짱을 끼는 아내를 더 꼬옥 안아봅니다. 바람에 날린 옷고름이 뺨을 스칠 때마다 첫 키스의 설렘이 스쳐갑니다.
군인 시절, 함께 어머니 산소를 찾았던 날이었습니다. 관상을 봐주겠다며 손수건을 옷고름 너비로 접어 아내의 이마에서 턱까지 먼저 쟀습니다. 그다음에 관자놀이를 잰다며 눈을 가리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첫 키스를 나누었던 그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부대로 돌아간 뒤 편지마다 '첫 키스의 병사로부터'라고 맺으며 짓궂게 우겨대던 그 작전. 화를 내면 어쩌나 했었지만 작전을 도모(?)했던 그 순수함으로 돌아가 아내를 존중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20여 년의 세월, 남은 날들은 더 이상 다투며 살 시간이 없습니다.


팔랑이는 옷고름이 아내의 용서처럼 뺨을 쓰다듬고 갑니다. 건성으로라도 교회에 같이 가주는 남편이면 좋겠다던 아내의 소망을 이제는 들어주려 합니다.
들어주리라, 들어주리라. 첫 키스 때처럼 아내를 어려워하고 아끼며 살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