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왔네? 죽어도 안 오겠다던 길
지리산 천왕봉에 다녀왔다
2년 만이다.
가까운 대청봉은 일 년에 두세 번 오르지만 지리산은 자주 가지 못한다.
그런데 평일에 백무동 가는 버스를 만났기에 한신계곡을 따라 세석대피소로 올랐다.
지도에는 세석까지 4시간 반으로 나와 있었는데, 나는 5시간 걸렸다.
이리저리 포커스를 대보느라 걸음이 빠를 수가 없다.
사진은 거의 찍지 못했다.
중턱까지는 깜깜했고, 여명 때는 빛의 골든타임으로 노렸으나 눈길을 붙잡는 풍경은 없었다.
백무동에서 세석 가는 길, 사진사에겐 별 볼일 없는 길이다.
볼일은 없고 두려움만 있었다.
곰이나 멧돼지를 만나면 어쩌나 하는 공포심.
풀숲에서 소리가 나면 걸음부터 멈춘다.
그리고 노려본다, 스틱을 장검처럼 들고.
친구 하나만 옆에 있어도 든든한데 혼자이기 때문이다.
산 주변엔 7학년이 없다.
그래서 툭하면 단독산행이다.
무박 2일 등산은 누구나 밤길을 세 시간쯤 걷는다.
말동무가 있으면 즐겁기도 한 길.
그러나 노인인 나는 꼬래비로 늘 혼자 걷게 된다.
여명이 트면서 한신계곡 상류에 이르렀다.
능선 너머로 세석 대피소가 있을 위치인데, 사진거리가 없다.
오르막 경사도는 두 번째 가라면 서운할 정도로 가파른 길.
사진 한 장 못 건진 지옥 같은 길.
다시는 오지 않을 길이라고 작심하며 올랐다.
설악산의 오색에서 대청봉으로 오르는 길이 힘들고 지겹기로 유명하다.
백담사에서 대청봉을 오를 때도 봉정암 직전 깔딱 고개에서 모두 지친다.
세석대피소로 올라가는 뒷길도 그에 못지않다.
다시는 못 올 길도 끝은 언제나 있다.
지독하게 고생시킨 길도 내려오고 나면, 산객의 마음을 바꿔버리는 게 산이다.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 지리산 종주의 절반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 지리산 종주를 시작하면, 세석까지 15시간쯤 걸어야 한다.
그런데 그곳을 다섯 시간에 질러오는 길이니, 헐떡임은 당연히 감수해야 할 길이 아니겠나.
그래서 초반에 지친 나에게, 백무동에서 세석으로 오르는 길은 이제 올 일이 없다.
죽어도 안 온다. 그러니 찍어가야 한다. 사진을.
세석부터 길이 달라진다. 능선길이다.
촛대봉에 올라서니 천왕봉이 보인다.
그때부터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좌우로 산맥들이 끝이 없다.
앞에도 산이고 뒤에도 산.
여러 번 왔는데도 올 때마다, 산이 이렇게 많았나 놀란다.
좌우로 장엄하게 펼쳐진 능선길.
지리산은 이맛 아닌가.
구름 위를 걷다 보면, 아득히 밀려난 봉우리들.
촛대봉을 지나 연하봉, 그 너머로 장터목대피소.
커다란 그림 간판 하나가 서 있다.
옛날에는 이곳에 장이 섰다는 안내글과 장터 모습을 그림으로 세워 놨다.






중산리와 백무동 중간 지점이긴 한데, 이 험한 산꼭대기에 장이 섰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젊어서 왔을 때는 장터목 산장이었다.
세석대피소도 현대화된 건물이 들어서기 전이라 세석산장이었다.
그 밑에 벽소령, 연하천도 모두 산장이라는 이름으로 산객들을 맞았었다.
산장, 대피소보다는 훨씬 정감이 가는 이름이다.
그때도 장터목 산장에 장이 섰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커다란 입간판에 장이 서 있다.
실감 나는 그림이지만 뒤로 하고, 제석봉을 지나 통천문(通天門)을 뚫고 오른다.
그래야 하늘의 왕이라는 천왕봉이 나온다.
이름만 들어도 한 번쯤 걸어보고 싶은 길이 아니겠는가.
이번 산행에서 참 좋은 날씨를 만난 것에 감사한다.
구름은 산 위에 떠 있고 산맥은 겹겹이 이어진 게 선명히 보인다.




지난번엔 구름과 산이 섞여있었는데, 산은 산대로, 구름은 구름대로 또렷하다.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주말이면 큰 산꼭대기엔 정상석에서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당연히 줄을 서야 한다. 그 줄이 자꾸 길어져도 서야 한다.
사진을 안 찍고 내려가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줄을 설 일이 없는 평일에 산을 다닌다.
이번 천왕봉도 호젓했다.
혼자 느긋하게 사방을 내려다보는 장쾌함.
산맥은 끝없이 이어지고 나도 그 속의 하나의 점이 된다.
산에 오르기 전부터 생각해 온 천왕봉 하나.
그곳에 올라서면 정상은 하나가 아니다.
주변의 또 다른 산 하나하나가 모두 정상이다.



내가 올라온 길도 보이고, 앞으로 내려갈 길도 보인다.
대청봉은 오른 다음 날 근육통이 가볍게 오는데, 지리산은 다르다.
당일 통증이 그날 밤부터 쎄게 온다.
몸이 먼저 알고 "너, 지리산 왔구나?" 하듯이.
여기서 2년 전 기억을 꺼내본다.
천왕봉에서 중산리 대절버스까지는 천천히 가도 세 시간이면 넉넉하다 했다.
중간 지점인 로터리대피소부터는 한 시간 반쯤이 끝.
그런데 나는 로터리부터 두 시간째 내려가고 있었다.
아줌마도 어린 학생도 모두 나를 추월한다.
경사가 심해서 발만 내밀면 저절로 내려가질 길 끝에, 중산리가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뒤로 걷고 있나? 싶을 정도로 모두가 나를 추월해 걷고 있다.
어이쿠, 주저앉아 사방을 보았다.
119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
구조대원 세 명이 30분이면 도착하니 그 자리에 꼼짝 말고 있으란다.
미안해서 조금씩이라도 내려가며 기다리겠다고 했더니 안 된단다.
구조차로 산 입구까지 온 대원들이 20분 올라올 길 위의 나.
굴러내려 가도 10분이면 되는 길이었다.
대원들이 도착했는데, 그들 중 한 명의 배낭은 냉장고였다.
차디찬 이온음료 한 병을 주길래 마셨더니, 정신이 들었다.
몇 가지 시키는 동작을 해봤는데 걱정할 병은 아니란다.
구조대장이 물었다.
"옛날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조회 중 쓰러지던 아이들 보셨죠?"
내 증세가 그와 같단다. 탈진한 것이다.
산길을 같이 걸어서 내려왔다.
119 구조차에 타니, 진주 대학병원으로 간단다.
안 간다고 했더니 동의서를 받으며, 서울까진 버스를 두세 번 갈아탈 건데 혼자 갈 수 있겠느냐고 몇 번이나 묻는다.
서류에 서명을 하고 혼자 서울로 출발했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들이다.
아무리 구급대라고 해도 어찌 이런 도움까지 무료로 해줄까?
부실한 건강도 내 책임.
노인 주제에 코스를 길게 잡은 것도 내 잘못.
모든 것이 국민 개개인의 책임인데 왜 무료로 해줄까?
낯선 대합실, 원지에서 서울 오는 버스를 만날 수 있었다.
프리미엄 버스, 우등버스 등이 있는데 도착하는 대로 아무거나 타야 한단다.
평생 타보지 못한 프리미엄 버스를 탔다.
우등버스 좌석에 칸마다 커튼이 있었다.
지리산 낙오자 한 명, 커튼에 가려진 채 편히 누워 서울까지 왔다.
차비를 미리 내놓은 전세버스를 놓치면, 많이 드는 개별 교통비.
밥도 사 먹고 대합실마다 기다리니 속은 쓰렸다.
자다가 깨어 커튼을 걷고,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보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
...
...
그런데.
또 다음 산이 떠오르니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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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만필, 다음 주부턴 발행시간이 18시→19시로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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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 쓰며 흥얼거렸던 '산사람'이란 노래, 진도타워 전망대와 함께 붙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