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때, 베테랑의 첫 글자는 B인 줄 알았다
베테랑의 첫 글자가 V인지도 모르면 고교생 맞는가?

2026년 7월 25일.
Y고 57 산우회의 서울숲 트레킹으로 10명이 모였다.
모교 교장을 지낸 이범희 동기도 있었는데, 며칠 전 세상을 떠난 농구선수 강현숙 이야기가 익고 있었다.
동갑내기 스포츠 스타의 부고는, 우리 마음속에 숨어있던 50여 년 전 기억까지 함께 불러냈다.
전 교장선생님은 사뭇 비장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그런데 그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오히려 웃음이 났다.
대뜸 "추모위원장으론 얘가 적격"이라며 나를 찍었다.
“내가 뭐 사귄 것도 아니고, 쫓아갔다가 미역국 먹고 온 눔인데….”
“그래도 말 걸어본 자는 네가 유일하잖아.
입씨름에서도 안 졌다니, 그냥 맡김이 아니고 맡낌.”
2026년 7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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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동영상: 가로보기 하셤>
교장선생님의 '맡낌'이니, 임기 이틀짜리 추모 위원장을 수락했다.
그리고 그 시절 얄개답게 웃음은 잃지 않고 회상하고자 한다.
서울 Y고 2학년, 나는 그때 수영선수를 막 그만둔 철부지 아이였고 공부는 진짜 못했다.
중1 때 창단된 수영부가 '수영반'이라 해서, 그곳이 화학반 물리반과 같은 줄 알고 들어갔다가 5년 만에 해방된 무식쟁이.
태릉 선수촌까지 다니느라, 학교 안에서 운동한 다른 운동부들보다 월등히 무식 뻔뻔.
공부 바닥이고 추남이었던 '추O승'도 나를 무시했을 정도였으니, 걘 똑똑한 축이었다.
지금은 나도 똑똑해져서, 브런치 블로그 유튜브까지 못하는 게 없는데. 무식한 데 한이 맺힌 분풀이다.
옛날엔 얼마나 무식했냐구? 스타급 그녀와 나란히 걷던 신당동 얘기 [응답하라 1972 ⑤편]을 꼭 봐주시라.
교복에 꽂힌 학년 배지 B자를 보더니, 3학년 이라던 그녀가 물었다.
"2학년 아니에요?"
나는 당황했지만 태연한 척 말했다.
"아니요. B자는 베테랑의 B로 3학년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기가 막힌다.
베테랑이 V인지 B인지도 모르던 아이였으니, 학문 수준은 중2나 넘어섰을까?
단축수업을 밥 먹듯 한 대가는 쓰라렸다.
나의 절친, 수영 후배 만식이는 모임 공지만 내면 전화를 걸어온다.
"형, 저 참석합니다."
"야 그거, 문자로 '참석' 두 글자만 찍으면 되는데, 아직도 안 배웠냐?"
"안 배우렵니다. ㅎㅎ 이래서 형 목소리 한번 듣는 거죠."
그는 아직도 베테랑이 B인지 V인지 모른다.
그런데도 사람은 참 좋다.
세계 농구의 '베스트 five'라는 위치, 그 자리는 올림픽 금메달보다 훨씬 높다고 생각한다.
코트에선 그저 작고 예쁘기만 했던 선수, 교복 입고 코트 밖에서 만나보니 갑자기 뻥 튀겨져 코끼리 같던 여학생.
만원 버스를 타고 집 동네까지 따라갔다.
겨우 말 붙였더니 종씨였다.
종씨인 줄 알았더면 그 고생을 왜 했겠나?
김 빠진 맥주에게 결정적 어퍼컷이 들어왔다.
학년도 한 학년 위란다. 빠질 김도 없는 맥주는 헛김을 들이켰다.
자빠졌는데 코가 깨질 일이 있는가? 나는 그런 눔이었다.
가슴이 두 근 반 세 근 반, 쫓아갔는데 종씨, 학년도 누나뻘. 농구부 주장 포스가 뿜뿜 풍기던 반듯한 여학생.
다행히 미인 특유의 ‘콧바람 쌩쌩’은 없었다.
운동실력은 S대깜, 미모는 미스코리아 미깜? 접근하는 자가 없어서 무주공산이었다고 생각된다. 미인 특유의 쌀쌀함도 없었다.
몇 년 전엔 청담동 성당에 다닌다는 소식도 들었다. M여고 동창회 홈피지기 '탁O나 선생님'을 통해 4~5명의 단체 미팅쯤을 상의해 보다 무산되기도 했었다.
지금부터 15년 전, 그녀는 KBL 심판위원장에 선임됐다.
남자 프로농구 사상 첫 여성 심판 위원장이었고, 이 일은 전무후무한 일로 기억하고 있다.
당시 한선교 KBL 총재는 각 구단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려, 심판위원장 인선에 난항을 겪던 중 “올바르고 강직한 사람”이라고 평가받은 고인을 발탁했다고 밝혔다.
이 대목에선 한국 축구판에서의 '히딩크'를 불러왔으며, 수많은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고 M여중에서 M여고로 의리를 지킨 충절의 여학생.
이후 여자프로농구 재정위원장도 역임했으니, 사회적 벼슬도 올라갈 만큼 올라간 사람이었는데..... 이젠 조용히 명복을 빕니다.
우리는 흔히 묻는다.
명 짧은 재벌 회장이나 유명인과 "운명 바꿀래?"
그럴 때마다 고개를 내젖지 않았던가.
벗님들!
우리 욕심 덜 내고 오래 삽시다.
가늘고 길게도 좋습니다.
아프지만 말고, 구구팔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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