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룻배와 행인, 그리고 따스한 정
1. 서른 해의 세월을 아우르는 울타리
어제(2026.7.18)는 복달임을 겸한 동창회가 있었다.
동창회라고 하면 으레 같은 학년끼리 만나는 모임을 떠올리지만, 우리 모임은 다르다. 안양에 사는 Y고교 출신들의 모임이라 선배와 후배가 한자리에 모인다.
위로 15년 선배님부터 아래로 15년쯤 후배까지, 서른 해의 세월을 아우르는 이들이 한 울타리 안에서 어울리는 것이다.
내 나이 올해로 일흔 하나. 학번으로 쳐도 중간 지점인데, 어느새 나는 대접받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은퇴자라는 이유로 회비는 조금 내고 맛있는 음식은 실컷 얻어먹는다.
비용의 대부분은 현역으로 활동하는 예순 초중반의 후배들이 기꺼이 짊어진다.
처음에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마음보다 고마움이 더 크다.
생각해 보면 참 아름다운 풍경이다. 후배들은 든든하게 선배들을 챙기고, 선배들은 후배들의 건강을 걱정하며 따뜻하게 잔을 들어준다.
학교 다닐 때는 까마득해서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던 선배들이었는데, 이제는 서로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얼굴을 마주 보며 건강부터 묻는다.
때에 따른 선배님들의 기부금도 큰 힘이 되는데, 어제 그 정겨운 나룻배에 탔던 분들을 적어본다.
[나룻배를 함께 탄 동문들]
42회 조재국 선배님
43회 원일랑 선배님
46회 이창기 선배님
53회 장석윤·임광진 선배님
55회 원용복 선배님
57회 설충기·김성수·이규하·강희준
60회 최영복 후배님
62회 김석일 회장님
70회 조효현 (살림꾼 총무님)
이날 최고의 어른이셨던 조재국 선배님은 이렇게 외치셨다.
"내가 100세까진 무조건 자신 있으니까, 그때 생일에 초대하면 모두 맨발로 뛰어오시게! ”
지나온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지만, 함께 걸어갈 세월 또한 아직 많다.
2. 눈앞의 음식보다 빛났던 국자 닮은 정
메뉴는 흑염소 요리였다. 시대가 바뀌니 복달임 음식도 바뀌었다. 양념 맛이 비슷해서인지, 사실 요리된 고기가 무엇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앞의 음식이 아니라, 서로의 앞접시에 고기를 퍼주던 국자같이 훈훈한 정이었으니 말이다.
기분 좋게 취기가 올라 밖으로 나왔다. 평소 같으면 함께 둥글게 서서 교가와 응원가를 불렀을 텐데, 어제는 자리가 마땅찮아 사진이라도 남겨야겠다 싶어 삼각대를 펴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행인 한 분이 선뜻 "제가 찍어드릴까요?" 하며 찍사를 자처했다.
우리는 고마운 마음으로 그분에게 주목(?)했다. 그 친절한 행인은 카메라를 요리조리 틀어대며, 마치 대단한 작품이라도 남길 기세로 정성껏 구도를 잡았다.
찰칵, 찰칵. 셔터 소리와 함께 훈훈한 추억이 박히는 듯했다.
3. 찍사의 다정한 마음까지 잘라낼 순 없기에
하지만 집에 돌아와 카메라를 보니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찍는 폼이 멋지다고 해서 사진까지 멋지게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평소처럼 리모컨 셔터를 이용해 내가 직접 찍을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스쳤다. 딱 세 장 찍힌 사진 중에 건질 만한 사진은 없었다.
처음에는 편집기능으로 구도라도 바꿔야지 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주변을 잘라내면 구도는 나아지겠지만, 찍사의 다정한 마음까지 잘려 나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삐뚤고 흐릿한 사진을 있는 그대로 간직하기로 했다.
비록 사진 건지는 데는 실패했어도, 선후배 간의 끈끈한 정과 낯선 이의 다정한 온기는 고스란히 남지 않았는가.
내 달력의 오늘 날짜에는 '아동 18시'라고 삐뚤빼뚤 적혀 있다. '아름다운 동창회 18시'라는 뜻이다.
비록 사진은 간판 불빛에 젖었을망정, 그 시간에 나가면 이토록 따스한 인간미를 건져 올릴 수 있다는 증거로, 나는 이 사진을 지우지 않고 내 마음에 그냥 걸어두려 한다.
선배라는 나룻배에 기꺼이 노를 저어주는 후배들이 있고, 길 가던 행인마저 다정한 마음을 보태주는 훈훈한 길. 이만하면 참 괜찮은 길이 아닌가.



✍ 월화의 덧붙이는 생각
블로그 이웃 여러분은 이번 복날에 어떤 따스한 정을 나누셨나요? 비록 멋지게 초점이 잡힌 사진은 없을지라도, 마음속에 뚜렷하게 각인된 온기 덕분에 올여름 더위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주변의 다정한 행인들을 만나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