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필/고교얄개

[응답하라 1972 ⑮] 그땐 우리도 우리가 한심했다

월화 희준 2026. 7. 6. 18:00

고2 얄개시절

 

그러니까 50여 년 전, 우리가 저지른 일 중에 범죄인 줄 알고 저지른 일이 딱 하나 있다.

정말 장난으로 말해본 거였는데, 그 말을 들은 두 친구가 착 달라붙는 바람에 우리의 모의는 급속히 합의됐다. 셋이서 시험지를 훔치기로 한 것이다.

시험 기간 중엔 각자의 교실을 도서관 삼아, 그곳에 남아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많았다. 밤이 이슥해지면서 불 켜진 교실이 몇 안 남았을 때, 우리는 겁도 없이 2층 교무실을 털었다.

그것은 타이거마스크의 박달 몽둥이 때문이다.

그는 수학 선생이지만 마스크를 안 써도 레슬링의 반칙왕 같이 생긴 남자인데, 시험문제 하나 틀리는 데 무조건 한 대씩 때렸다.

다른 애들은 몇 개 틀렸나를 걱정했지만, 운동선수였던 나는 몇 개 맞을까가 궁금한 처지였다. 그러니 몽둥이 앞에 도둑질인들 망설일 여유가 있었을까.

이튿날의 시험과목이 수학과 화학인 날이었다.

나머지 공부하느라 최후까지 교실에 남은 애들은 60명 중에 50등 밑으로 기던 서넛으로 기억한다. 

수영선수였던 내 밑으로 럭비부와 농구부가 번갈아 바닥을 기고 있었고 민간인(?)도 두엇 있었다. 내가 민간인을 깔고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뉴스이기도 헸다. 

그래서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공부가 뭐 마음먹는 대로 다 잘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결단을 내린 것이다.

현관 지붕에서 빗물관을 타고 올라 2층 교무실 창틀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키가 조금 큰 죄로 내가 나섰다.

두 친구는 나를 받쳐주고 복도 쪽으로 돌아가서 망을 보다가, 내가 나올 때를 알려주기로 했다.

창문으로 들어가서 정문으로 나오기. 가슴은 퉁탕 퉁탕거렸지만 모든 일은 순조롭게 끝났다.

두 과목 시험지를 거머쥔 우리는 세상을 놀라게 할 마음에 설레었다. 한 과목이라도 반 top을 해본다는 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일 뿐이었으니까. 우리가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집에 있는 짜식들아, 두고 봐라 내일은 이 몸이 반 top이다."

두 과목 덕에 우리의 평균 성적이 반 평균을 윗돌 수도 있다는 사실에 들떴다.

마치 노다지를 캔 놈들처럼 환호하며 뛰어다녔다. 우리는 더 이상 반 평균을 깎아먹지 않겠노라는 선언식도 가졌다.

더 이상 공부할 필요가 없으므로, 우리는 보무도 당당히 교정을 나섰다.

 

중국집 다다미방


중국집 다다미방에 앉자마자 시험지와 책을 폈다.

주인아저씨는 들어오자마자 담배 피우는 놈은 봤어도, 책부터 피는 놈들은 처음 본다며 갸우뚱거렸다.

참고서까지 펴놓고 열심히 풀었으나 우리의 한계는 곧 드러나고 말았다. 그 대가리가 그 대가리 아닌가.

서울에 전화 있는 집이 반도 안 되던 시절이어서, 어디 전화로 물어볼 만만한 친구도 없었다.

중국집 문 닫는 시간까지 열심히 풀었으나 우리는 우리가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이튿날 묘한 기분으로 신기한 시험지를 받았지만, 우리 셋의 점수는 겨우 반 평균 정도라는데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내 점수를 미리 알고 시험을 치르는 기상천외한 사건 앞에 씁쓸한 입맛만 다셨다.

그러나 우리가 미처 몰랐지만 중대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 시원찮은 점수 때문에 우리는 완전범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교무실에 도둑이 든 것은 쉬쉬하며 알려졌고, 우리가 놀랄 만한 점수를 얻었다면 단박에 걸렸을 것이다.

우리의 모의는 서로 다른 문제를 하나씩 틀려주는 것까지였는데, 정말 위험하고 큰일 날 생각들이었다.

빗물관을 타고 2층 교무실에 오르다 (삽화: 정종해)


어른이 돼서야 그 범죄의 크기가 엄청난 것임을 알았지만, 지금도 그 밤이 생각나면 섬뜩한 추억 하나 창밖 빗물관을 타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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