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필/고교얄개

[응답하라 1968 ⑭] 아아 그때 그 감자

월화 희준 2026. 6. 29. 18:00

1968년은 제가 중학생이 된 해입니다.

 

신입생의 특징은 새 교복이죠. 헐렁하게 조금 큰 교복과 모자까지 조금씩 컸던 꼬마들.
 
새 책가방을 들고 오전 수업만 마치면 동대문 수영장으로 붙들려 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온몸의 힘이 다 빠질 때까지 수영을 배웠습니다. 체벌에 대한 긴장과 혹독한 훈련으로 늘 허기가 졌었죠.

몸이 파김치가 되어 수영장을 나서면 호떡, 냉차, 구운 감자를 파는 리어카가 즐비했습니다. 축구장 뒷길부터 지금의 전철역까지 먹거리들이 띄엄띄엄 늘어서 있었습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러 구운 감자가 석양빛에 번들거리면 왜 그리도 먹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첫 집을 참고 지나쳐도 버스정류장에 가려면 그런 리어카를 십여 개나 더 지나야 했습니다. 사방에서 아주머니들이 불렀습니다.

"학생, 회수권도 받아. 어여 와~"

버스표를 받아다 자기 아들에게 주려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프라이팬 위의 감자 (삽화: 정종해)

10원에 구운 감자 두 개

 

10원만 내면 감자 두 개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종일 햇볕에 데워져 미지근했지만, 큰 주전자에 담긴 물도 얼마든지 마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 받은 회수권은 매일 남는 게 없었기에 군것질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배가 너무 고팠습니다. 하나 남은 회수권을 들고 결국 리어카 앞에 섰습니다. 감자를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리고 걸었지만, 프라이팬에 쇠칼 뒤집는 소리까지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쇠칼 소리가 들릴 때마다 침을 꼴깍이며 참 다가 '에라, 먹고 보자' 일을 저질렀습니다.

중학교 1학년 꼬마에게 큰 감자 두 개와 주전자에서 따라먹던 물은 충분한 식량이 됐습니다.

차비는 날아갔죠? 배를 채웠더니 동대문부터 마포까지 금방 갈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걸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머리가 좀 컸다면 차장 누나에게 "한 번만 태워주세요, 내일 차표 두 장 낼게요!" 하고 넉살 좋게 비벼라도 봤을 텐데, 중학생 땐 그럴 요령도 없었습니다.

터덜터덜 걸어 광화문쯤 왔을 때, 군것질로 채운 배는 이미 다 꺼져 버렸습니다. 거기서 마포까지, 점점 무거워지는 가방과 씨름하다시피 집으로 왔습니다. 회수권과 감자를 바꿔 버린 일은 평생 못할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TV를 보다 감자 뒤집는 쇠칼 소리가 나면, 그 옛날 리어카에서 굽던 감자가 떠올라 침이 꼴깍 넘어갑니다.

지금은 먹을 것이 무한정 있고, 오히려 찌는 살이 겁나 스스로 운동을 하는 시대입니다. 얼마나 좋아진 세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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