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필

칠순 부부, 4년 만에 다시 테니스장으로

월화 희준 2026. 5. 12. 18:00

 


올해 어린이날은 아주 특별하게 보내서 만족스럽다.
 
중학생이 된 큰 손주 대신, 네 살배기 꼬마 숙녀와 함께 했기 때문이다.

오전에는 시청 어린이축제 행사장을 돌았다.
풍선도 받고, 비눗방울도 따라다니고, 솜사탕도 공짜로 받았다.

네 살 아이의 하루도 참 바빴다.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또 금세 다른 데로 달려가는 마음을 붙잡느라.

그렇게 네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우리 가족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테니스장.

칠순 노부부 둘.
30대 아들 부부 둘.
그리고 네 살배기 손녀 하나.

도합 다섯 명이 한 코트에 모였다.
신기하게도 모두 라켓을 든 모습으로.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우리가 결국 이렇게도 가족이 되어가는구나.

라켓을 쥐고 함께 서 있기만 해도 좋은 가족. 공을 치지 않아도 대화만으로 웃음이 이어지는 가족. 테니스장이 운동장이 아니라 커다란 마루처럼 느껴지는 가족.
 
다섯 가족이 하나의 코트에, 이건 꽤 희귀한 풍경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 집의 이 귀한 풍경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셈이다.

내 운동 인생을 돌이켜 보게 된다. 

나는 중학교 배치고사를 보고 진학한 마지막 세대였다. 내 뒤는 세칭 뺑뺑이 세대.
그렇게 들어간 학교는 바로 마라톤 영웅 손기정 선수를 배출한 곳이었다.
 
그곳은 전교생에게 단축마라톤(10km)을 시켰다. 전교 일등 한 명에게만 교복을 시상했는데, 그 일등이 나였다.
 
교내 운동회 땐 5,000미터 대표선수를 도맡았는데, 운동장을 25바퀴 도는 경기라 1등은 했지만 땡볕에 지겨웠다.

중고교 시절에는 수영선수 생활을 했다.
전국에 유일했던 실내 풀장을 둔 태릉선수촌을 다니느라, 단축수업을 자주 했다.
 
학교 안에서 운동하던 육상부 농구부 럭비부보다, 공부는 해볼 기회가 없었고 확실히 바닥을 기었다. 

그렇지만 고1 때 고3이던, 아샤물개 조오련 선수와 혼계영을 뛰어 우승한 호사도 누렸다.
2,3학년 형들을 제치고 고1 때 수구 골키퍼도 했다. 
 
중1 HR시간에 화학반 문리반 옆에서 나를 데려간 수영반. 그 반은 고2 때 해체됐다. 
 
당시 학교 행정은 단순 옹졸했다. 
창단 멤버로서 5년 동안 박박 긴 선수들을 후원자가 없다고 내쫓은 것이다. 해체하려면 2~3년의 기한을 두고, 단계적 해산을 모색했어야 옳았다.
 
일반 학생도 아니고 운동선수도 아닌 나는, 죽도 밥도 아닌 세월 앞에 비참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 청년은 군대 화천 사단의 스케이트 선수로 차출되어, 선수 출신 선임병들에게 혹독한 훈련도 받았다.

땅 위를 달렸고,
물속으로 헤엄도 쳤고,
얼음 위에서도 땀 뻘뻘 흘리며 질주했었다. 
 
고2 때 수영부를 떠난 뒤론, 수영장물을 쳐다보기만 해도 진저리가 쳐졌다.
바다도 싫어 산으로만 다녔다.
 
마흔 중반에 'TV 아빠의 도전'에 출연할 기회가 있었다.
sbs PD가 하도 졸라서, 딸애와 아내 앞에서
수영 폼 좀 잡아봤는데 익사할 뻔.
 
고교 졸업 후 30년 만의 수영이지만, 신기하게 물에 떴었다.

sbs TV에서 찍어준 '수영선수 익사 직전'

 
부부가 오래 살며 같은 취미를 갖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그 취미가 운동이라면 더욱 어렵다.

등산쯤은 쉽다.
러닝도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테니스는 다르다.

탁구나 배드민턴과는 또 다른 예민한 운동이어서. 운동화 구겨 신고, 대충 한 게임해 줄 수 있는 종목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부부가 같이 테니스를 친다는 것만으로도 꽤 귀한 인연이라고.
 
그런데 아들 부부까지 함께 테니스를?
이건 거의 희귀 보호종 수준이다.

내 주변에는 테니스 친구들이 참 많았다.
선수 출신도 있었고, 전국대회를 다니던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 부부까지 함께 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나의 테니스 역사는 신혼 시절부터 시작됐다.
한 관청의 대표선수 생활도 십 년 넘게 했다.
휴일이면 아침부터 테니스장에서 살았다.

그러니 아내 입장에서는 얼마나 미웠겠나.
“테니스장 가는 건 좋은데, 좀 일찍 들어와요.”

테니스한테 남편을 빼앗겼다고 느낀 걸까? 어느 날 아내의 호연지기가 발동했다.

“그 테니스, 뭐가 그렇게 좋기에… 나도 한번 해봅시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용감한 결심이었다.
아내의 테니스는 남편을 넘어
나중에는 전국대회를 다녔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아내가 아들을 초등학교 선수로 키워낸 것이다.

내가 아내를 가르쳤고,
아내는 아들을 선수로 만들었다.

그리고 선수 경력의 아들은 자기 아내를 가르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며늘아기가 테니스를 배운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담담했다.

테니스의 고수는 항상 햇빛을 등지고 친다는 원칙 때문이었다.
하수의 얼굴은 검게 타고 기미도 생기고, 젊은 여성에게 권할 운동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은근한 기대감도 숨길 수 없었다. 아, 우리 가족의 둥근 궤적이 완성되고 있구나.

손녀 사진도 보았다.
제 몸 만한 라켓을 들고 똘망똘망.

아직 공보다 과자가 더 좋은 나이인데,
용케 라켓은 꼭 움켜쥐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주 어린이날, 실제 코트에서 본 손녀는 더 귀여웠다.

자기 키보다 네트가 높기에, 공에 맞을 일이 없는 꼬마. 그 볼girl의 거침없는 행보에 웃음이 터졌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우리는 테니스 가족이 되어간다.
가장 고마운 구성원은 역시 며늘아기다.

나와 아내, 아들로 이어지던 공의 궤적을,
기꺼이 받아서 우리 가족 운동에 화룡점정을 찍어주었으니. 어찌 아니 이쁘랴.

이제 우리는 실력이 느는 것을 바랄 나이가 아니다. 누구와 함께 코트에 서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도 아들의 지적 한마디는 놓치지 않으려고 솔깃. 뭐라 따지면 안 가르쳐줄까 봐 순종(?)하는 모습인가.

“아버지, 발이 먼저 나오셔야죠.”

예전 같으면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쳤겠지만,
지금은 반대다.

2026.5.5. 할매 할배, 아들 내외와 손녀가 한 코트에

 
내가 가르친 아내가 키워낸 아들이
이제는 내 자세를 고쳐준다.

생각해 보면, 마라톤도 배웠고,
수영도 배웠고, 스케이트도 제대로 배웠다.

그런데 평생 가장 사랑한 테니스는,
황혼기까지 지나서야 비로소 배우게 된 레슨.
이보다 더 아름다운 보충수업이 또 있을까.
 
흡족한 하루였고
글피 어버이날엔, 난생처음 하프마라톤에 도전한다.